몇번이라고 약속해주면 좀 더 편할 것 같다...

몽달이 생각  |   2011. 10. 7. 16:54
고등학교 1학년때 임파선 종양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끝냈을 때는 그 때가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병원 치료는 받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그때의 아픔이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만 바라보았던 이기적인 나에서 세상에 아픈 아이들이 있고 세상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아픔이 있을거라는 것에 대한 인지, 그리고 종교에 대한 시작점을 만들어 주어서 삶을 돌이켜 볼 때 필요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순조롭게 잘 지내고 대학도 다니고 대학원도 다니고 공부에 대한 욕심인지 무엇인지 모르지만 싱가포르에서의 삶은 흥미진진하고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고 생각할 무렵, 뜻하지 않게 집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쓰러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택시타고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에 들어가서 검사를 받았을 때 내가 제대로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단어를 들어야 했다.

Brain tumor, you got...

똑똑히 너무도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었던 그 단어 안에서도 난 믿을 수가 없었고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항암제를 투여받으며 가장 부러웠던 친구들은 모자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었다. 오늘은 어떤 모자를 쓸까, 항암제로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아이는 모자를 쓰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보였다. 나는 모자가 싫었다.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머리카락 몇가닥을 항상 안타가워 하고 슬프하면서도 그것을 가리기 위한 모자는 나에겐 마치 죄수의 수인 번호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정말 볼품없고 민둥머리에 가까운 그 머리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두번째 싫어했던 것은 죽이다. 아픈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는 그 인식에 그 이후에도 속이 안좋아도 죽을 먹기 싫어했고 차라리 아픈 배를 이끌고 고기를 먹으면 먹었지 죽은 죽어도 먹기 싫어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모자쓰는것, 죽먹는 것은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아마도 내가 아프지 않아도 아픈 사람이라고 표시되어지는 그런 물건들로 연상되어 그냥 알아서 싫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아픈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싫었다. 항암치료가 채 끝나지 않은 고등학교 1학년 다시 복학해서도 한달에 한번 반 학급 친구들 아무도 모르는 조퇴를 하고 항상 병원에 치료 다니면서도 그리고 치료받기 때문에 공부 못해도 될거라는 핑계는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아 항암제를 몸에 가두고 전교3등을 했던 기억도 난다. 공부를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프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아픈 사람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 가장 싫었다.

싱가포르에서 달고 온 뇌종양도 심지어 1년여동안 부모님 모르게 혼자서 치료받았다. 다행히 병원일을 할 수 있어서 치료비의 부담은 적을 수 있었지만 한번 치료 받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손발이 떨리는 순간에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맡겨졌던 발표를 수행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쉽게 누군가에게 얘기하지도 못하고 얘기하더라도 정말 남 얘기하듯 얘기하는 그 와중에도 그렇게 내가 아픈 사람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못하고 난 아무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그래서 그런지 누구에게도 쉽게 얘기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생각되어지는 신에게 원망으로 시작하며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왜 나에게만 이렇게 하시는 건가요..., 무엇을 그리 내가 잘못했나요..." 누구도 들어주지 아니 하기 싫어 숨기고 싶었던 그 이야기는 결국 너무도 할 수 있는게 없는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은 오히려 내가 이겨낼 수 있는 고통에 대한, 인내에 대한 테마를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일이 다시 일어났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종양의 영향인지 아님 다른 영향인지 몰라도 이제 다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첫 치료... 생각보다 힘들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마음이 차갑고 힘이 빠지는 치료의 과정을 보내고 조금 힘내 일어서보지만 왜 또 이런 시련 안에서 내가 살아야 하는지 원망이 조금 더 큰 하루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누구에게도 얘기하고 싶지 않던 그 이야기를 이젠 그냥 내려놓는 심정으로 그냥 적어봅니다. 누군가 나를 병자로 바라보는 그 끔찍한 기분을 싫어하면서도 왜 이렇게 적어 내려가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는 그렇게 기도하고 나 스스로에게는 너무도 소흘했던 기도 때문인지 저를 알고 있는 분들이 저 대신 저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랫만에 노트북도 꺼내어 평소와 같이 하던 일들, 공부들을 하고 싶었는데 막상 아... 다르구나 하는 마음만이 가득합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지만 그냥 기도의 큰 힘을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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