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다반사'에 해당되는 글 100건

  1. 2012/01/07 캐스커 (Casker) - 안녕
  2. 2011/11/24 에밀리 로즈의 엑소시즘 - The Exorcism of Emily Rose (2)
  3. 2011/09/30 [내주변] 나눌게 없네요...
  4. 2011/09/11 카페 - 꿈꾸는 타자기
  5. 2010/11/10 [내주변] 쓸모없는 구슬에 대해서...
  6. 2010/11/08 [내주변] 껌과 영수증 종이 (1)
  7. 2010/11/04 [내주변] 내 자식에게 자비로움을 가르치고 싶다.
  8. 2010/11/04 [내주변] '내' '주'변만이라도 '변'화시키기
  9. 2010/10/16 [내주변] 세상은 보물찾기와 같은 것... (1)
  10. 2010/03/21 틱장애우와 핸드폰 통화하는 여인

캐스커 (Casker) - 안녕

일상 다반사 2012/01/07 04:38


오늘도 내 발걸음은
늘 항상 나도 모르게
너와 내가 함께 있던 곳으로 달려

파란색깔 바람불어
내 위로 스쳐지나가
네가 웃던 모습에 그 색깔과 닮아있어

나나나나 노랠 부르며 달려
네가 있던 곳으로
작은 손을 내밀어 나를 반기는 너의 추억과 안녕
변하지 않는 모습의 하늘
변하지 않는 거리 위에
빛을 뿌리며 너의 기억과 안녕

파란 풍선 날아올라 내 위로 손을 뻗지만
안타깝게 닿지 않는 네 맘과 닮아있어
나나나나 노랠 부르며 달려
네가 있던 곳으로
작은 손을 내밀어 나를 반기는 너의 추억과 안녕
변하지 않는 모습의 하늘
변하지 않는 거리 위에
빛을 뿌리며 너의 기억과 안녕

나나나나 노랠 부르며 달려
네가 있던 곳으로
이제 너는 없지만 여전히 나는 다시 여기 와 안녕
변하지 않는 모습의 하늘
변하지 않는 거리 위에
변해져 버린 우리 기억과 안녕




 
요즘 즐겨듣는 캐스커(Casker) 의 안녕이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문득 옛날에 쓴 글이 기억이 났다.
이별의 말을 고했습니다. - http://blog.meson.kr/51

잊었다고 생각했던 추억들이 문득 그 추억의 장소에 머물게 되었을 때 이별을 고한다는 생각으로 쓴 글이라고 생각했고 노래 안의 가사에서 나오는 그 '안녕'이라는 가사가 추억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사를 직접 보면서 들으니 오히려 그 추억을 즐기며 회상하며 아직 이별하지 않는 연인과의 추억에 '안녕' 인사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별 후라도 그 '안녕'은 정말 무덤덤하게 아픔의 느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마음의 표현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무관심하게 보았던 이 곡의 제목또한 '안녕'이었다. 그 어떤 표현이라도 추억은 아름답고 그 추억에 이별을 위한 안녕이나 인사를 위한 안녕이나 결국 그 어떤 것이 되었다고 해도...

만약 이별한 인연과의 추억에 대한 이별 안녕이라면 잊으려 하는 그 마음이 아플 것이고,
인사를 위한 안녕이라면 그 의연함이 더 가슴아플 것이고...

만약 현재의 인연과의 추억에 대한 이별 안녕이라면 앞으로 헤어지는 마음이 아플 것이고,
인사를 위한 안녕이라면 그 아련함이 더 가슴아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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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로즈의 엑소시즘 - The Exorcism of Emily Rose

일상 다반사 2011/11/24 21:04
원래 엑소시즘 영화를 보지 않던 내가 왜 이 영화를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접한 이후 몇가지 사람들이 많이 언급하지 않은 이야기의 내용을 가지고 나누고 싶은 부분이 생겼다. 정확하게 어떤 메세지를 이야기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결론을 향해 가야 한다는 생각에 내용을 전개하고 싶다. 실제 이야기가 영화 이야기가 살짝 혼재되었지만 내용의 큰 줄기는 비슷하므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에밀리 로즈의 엑소시즘 (2005, The Exorcism of Emily Rose)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했고 그 안의 내용도 실제의 내용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많은 부분을 신경썼다. 몇가지 엑소시즘이 가지는 공포적인 부분을 영화화해서 첨가한 부분도 보이지만 큰 맥락상 중요한 부분은 막 대학생이 된 여인이 마귀에 씌여 고통 받는 이야기를 주축으로 해서 엑소시즘을 시행한 신부를 과실치사로 기소되어 법정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엑소시즘 공포 영화를 가장한 법정 영화이면서 법정안에서 결국 종교적 결론을 만들어가는 종교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장르를 공포라고 부르기엔 기존의 엑소시즘 영화에 비해 절제된 공포 장면은 공포 영화 매니아에겐 그다지 별로라는 느낌도 들 것 같다. 


아넬리즈 미셸 (Anneliese Michel, 1952~1976)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독일(구 서독)의 아넬리즈 미셸이라는 실제 인물이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평범하게 자란 미켈은 대학생이 되고 알수 없는 근육과 관절의 심각한 변형과 고통을 호소하면서 점점 심각해지며 환각을 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언어를 이야기하며 정신병 치료를 위해서 장기간 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증세는 오히려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병의 원인이 의학적인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판단에 미셸의 부모는 교구에 요청을 해서 공식적으로 엑소시즘을 요청했고 교구 주교였던 죠셉 스탠글(Josef Stangl) 는 아놀드 렌츠(Arnold Renz) 신부에게 엑소시즘을 허락하였다. 



엑소시즘을 수행하는 중에도 미셸의 발작 증세와 이상 증세 등으로 인해 항발작제 및 복합적인 항 정신성 의약품을 투여했으며 후에 이러한 치료제의 중단을 요구했던 아놀드 렌츠 신부의 과실치사의 주요한 협의 사실이 되기도 했다. 결국 증세는 점점 악화되고 퇴마의식을 포함해 대화 내용을 녹음해서 실제 녹음 내용이 공개되었다. 여대생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평소 미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고 보기 힘든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개된 내용은 

◈ 묵주성월과 묵주기도에 대한 내용 ◈ - (전문 내용 http://v.meson.kr/upcGAM

▷ 일부 내용 보기


◈ 자신의 존재와 이름에 대한 내용 

자신의 존재와 이름을 이야기하라는 질문에... 

영화 The Exorcism of Emily Rose (2005)


자신은 루시퍼(Lucifer), 이스카리옷 유다(Judas Iscariot), 카인(Cain), 네로(Nero), 히틀러(Hitler), 플라이어쉬만(Fleischmann, 16세기 타락한 사제) 안에도 존재했다며 자신을 이야기했다. 


결국  3년동안의 치료와 엑소시즘에도 불구하고 미셸은 30여 킬로그램의 몸무게로 최종 부검에 의한 공식사인은 탈수와 영양실조로 죽음을 이르게 되었다.(1976년 7월 1일) 그런데 이 사건이 그저 대학생의 죽음으로 그치지 않고 신부와 부모의 과실치사 형사 사건으로 TV에 공개된 법정 심리 과정에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부 및 부모의 과실치사에 대한 법정 심리


이 부분은 실제 이야기와 영화의 내용을 같이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 영화는 공포 영화를 가장한 법정 영화이다. 법정 심리 안에서의 가장 큰 공방은 엑소시즘이 실제 효과가 있느냐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런 마귀가 우리에게 이렇게 작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해를 먼저 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검사의 경우 논리와 과학, 그리고 의학적 근거를 통해서 엑소시즘의 과정에서 약물 치료를 그만두게 해서 미셸(에밀리)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고 반면 변호측에서는 미셸(에밀리)의 실제 육성 녹음 내용을 통해서 그리고 신부와의 엑소시즘 과정의 내용을 진술하면서 초자연적, 초현실적 내용에 대한 종교적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소위 과학과 의학의 분야로 설명될 수 없는 종교의 초현실적 현상을 서로 대치되며 설명을 해야했다.  

그러나 검찰측 (영화에서는 D.A = District Attorney, 지방 검사) 은 미셸(에밀리)이 배우지 않은 언어를 구사하는 내용이나 초현실, 초자연적 내용에 대해서 과학적 개연성을 설명하게 되며 그것을 통해서 신부의 유죄를 주장한다. 그러나 내용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은 인정하게 된다. ① 인간에게 자주 일어날 수 있거나 과학으로 설명하기엔 힘든 많은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점, ② 이성의 영역에서 설명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통해 증명하기는 힘든 부분이라는 점이다. 

엑소시즘 중에 있는 미셸


법리 과정에서 미셸(에밀리)이 보여준 초자연적 현상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된다. 

① 마귀에 의한 미셸(에밀리)이 보여준 초자연적 현상: 관절이나 근육이 비이상적으로 꺾기거나 배우지 않은 언어와 '저주받은(Dammed)', 지옥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이는 아프기 전 미셸(에밀리)이 가진 성격과 태도를 통해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② 성모마리아를 만난 이야기: 법정 심리를 통해서 피의자 아놀드 렌츠(모어) 신부는 미셸(에밀리)이 엑소시즘 과정에서 잠시 정신을 차린 순간 해준 이야기를 법정에서 이야기하게 된다. 그 안에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용은 영화에서 나온 대사를 붙인다. 

영화 The Exorcism of Emily Rose (2005)


(신부님 읽음) 
"I asked the Blessed Mother, 'Why do I suffer like this?" Why did the demons not leave me tonight?
나는 성모님에게 물었습니다, 왜 내가 이같은 고통을 받아야 하나요? 왜 악마들은 나에게서 떠나지 않나요?

"She said, 'I am sorry, Emily. The demons are going to stay where they are. '
성모님이 말하길, 미안하구나 에밀리, 그 악마들은 그들이 있는 곳에(너에게) 계속 머물러 있을 것 같구나.

Then she said, 'You can come with me in peace free of your bodily for or you can choose to continue this. You will suffer greatly. But through you, many will come to see that the realm of the spirit is real. The choice is yours. "'
그리고 성모님이 이어 말하길, 너는 육신으로 부터 자유로와져 나와 천국에 갈 수 있다. 아니면 너는 이 고통을 계속 감수해야 할 것 같다. 그 고통은 무척이나 힘들 것이지만 그 고통안에서 너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가 사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선택은 너의 몫이구나. 

I choose to stay.
여기에 남겠습니다. (계속 고통 안에 있겠습니다.) 

영화 The Exorcism of Emily Rose (2005)


"In the end, good will triumph over evil. Through my experience people will know that demons are real. People say that God is dead. But how can they think that if I show them the devil?"
결국, 선이 악을 이길 것이고 나의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이 악마가 실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줄 것이다. 사람들은 신은 죽었다.(존재하지 않는다.)라 얘기한다. 그러나 내가 이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악마을 보여준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③ 성흔 (stigmata): 법정의 신부이 성모님과 에밀리의 대화 내용을 끝내고 나서 변호사가 신부님에게 성흔에 대해서 물어본다. 

영화 The Exorcism of Emily Rose (2005)


(변호사)
Did you see these wounds on both of Emily's hands and both feet?
당신은 에밀리의 두손 두발에 나타난 상처를 보았나요? 

(신부)
Yes. Yes, the wounds lasted for some time.
예 그럼요, 그 상처는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변호사)
And did you attach any supernatural significance to these wounds?
그럼 당신은 그 상처에 어떠한 초자연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시나요? 

영화 The Exorcism of Emily Rose (2005)


(신부)
I believe they were stigmata.
난 그것이 성흔(stigmata)라고 믿는다. 

성흔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다음의 내용을 참고 (http://v.meson.kr/sTUrny). 

세가지의 초자연적인 내용을 통해서 미셸(에밀리)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엑소시즘이 옳은 판단이었고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과실치사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지 않았던 법정 내용에서 아놀드 렌츠(모어) 신부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내용은 미셸(에밀리)이 '왜' 그런 고통을 받아야 했는가에 대한 의학적인 분석이나 판단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고통 안에서 어떤 메세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는지에 대해서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결국 과실치사에 대해서 유죄가 인정되었지만 미결구금기간(법정 판결 이전 구속기간)을 포함한 6개월의 집행유예의 과실치사(negligent homicide)에 비해 상당히 가벼운 형량과 함께 바로 풀려날 수 있었고 세상과 떠나서 은둔하며 살게 되었다고 한다.  

법정 영화가 종교 영화가 되는 순간...


사실 이 영화가 주는 충격은 두가지였다. 첫번째는 실화였다는 사실이며 녹음자료를 포함한 상당히 구체적인 증거들이 세상에 공개되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제목은 공포영화인듯 보여주면서 내용은 법정영화이지만 그 결론은 결국 종교영화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만약 가톨릭이 가지고 있는 성모마리아에 대한 공경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영화는 믿지 못할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픽션이 될 수 있고 실화라고 해도 그 증거의 구체성이나 신빙성을 떠나서 믿지 않을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미셸(에밀리)이 3년동안의 고통안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는 상당히 정확한 것 같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악마의 존재는 실재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무섭고 두려움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미셸(에밀리)이 그런 고통을 받았을까? 그리고 성모님이 선택하라고 했을 때 깨끗하게 고통을 멈추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상황에서 왜 그대로 남아 있겠다고 결정한 것인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느낀 부분은 '악마가 존재하는 것을 믿는다'가 아니라 'Demons are real'라는 것이다. 믿는 문제는 개인의 문제일 뿐 '악마는 실재한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통해 알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악마의 존재때문이 아니라 악마의 존재를 통해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반대의 선을 가지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반증할 것이고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세상의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인간과의 관계에서 이야기할 때 '저런 악마가 있나', '저 인간은 악마야' 라며 그 자체를 포기해버리게 된다. 그러나 가톨릭의 교리 안에서 그 어떤 사람도 죄를 짓고 나쁜 행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회개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음을 믿는다. 미셸(에밀리)이 주는 의미는 우리에게 악마의 존재 뿐만 아니라 악마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인간을 위한 위로도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즉, 어떤 사람을 바라볼 때 '저런 악마'가 아닌 '악마에 고통받는' 하나의 불쌍한 영혼'이라는 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무리 힘들게 하고 상처주는 사람이 내 관계 안에 존재한다면 그 존재가 악마 그 자체임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은 선하지만 지금은 악에 의해 고통받고 자신도 원하지 않는 악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악마 자체'로 생각하는 것과 '악마에 영혼이 물든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큰 차이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에게 상처주고 고통을 주는 악의적인 상대방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의 악마성을 정의하고 판단하지 말고 그 영혼이 하루 빨리 악마로 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더 옳은 것이라 믿는다.

상당히 오랫동안 여운의 이유는 영화를 통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악마인 상대방"이 아닌 "악마에 고통받는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다를 것이다. 종교의 영역이라면 분명 그 기도또한 달라질 것이다. 

Anneliese Michel 의 무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이 세상에 신이 만든 어떤 피조물도 선하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선을 깨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고, 우리의 판단이 될 것이다. 미셸(에밀리)이 느낀 고통도 우리가 보기엔 힘들고 끔찍하지만 분명 그녀의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더 큰 메세지를 주기 위한 아름다운 고통이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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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변] 나눌게 없네요...

일상 다반사 2011/09/30 02:56
서점에 갔다. 모두들 책을 찾고 책을 보느라 분주한 그 곳에서 우연히 들려오는 책 읽는 소리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일까 귀기울여 찾아간 곳엔 엘레베이터 옆에 악세사리를 파는 곳에 계신 점원 분께서 청소를 담당하는 어떤 분이 쉬는 중이셨는지 악세사리 판매 점원 분이 읽어주는 책에 경청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 읽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고 당연하다고 느낄 그런 우리나라에서 설마 글을 읽지 못하는 분이 계실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래도 고단한 삶에 아직 배움을 이루지 못해 글을 읽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 있을거라는 이해를 하고 좀 더 서성거리며 나도 모르게 경청하게 되었다.

점원 아주머니는 정말 혹시나 한글자라도 놓칠까 또박 또박 읽어주시면서 정성들여 낭독하는 모습이 가득하였다. 순간 나도 모르는 전율이 느껴지며 자신이 가진 작아 보이는 재능, 아니 어쩌면 그 누구도 재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능력을 가지고 그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너무 큰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감동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겨울에 길목에 있는 가을의 풍경과 그 풍경 안에서의 많은 정물들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산문시였던 것 같았다. 미소를 지으며 듣고 계시던 분께서는 이내 이렇게 느낌을 말씀하셨다.

"가을의 돌들이 겨울의 시작을 의논하는군요. 고마워요" 

뭔가 정리되지 않은 듯 그러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대답도 가슴이 뭉쿨했지만 무엇보다 저런 나눔도 있구나 하는 작은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 

출처: 영풍문고


내가 가진게 뭐 있다고 나눌 수 있겠어... 
조금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라는 핑계 안에서 우리의 나눔에 대한 핑계를 대며 너무도 많은 것을 가진 우리들의 모습과 겹치며 정말 무엇인가 값지고 좋은 것 남들 보기에 충분하고 부끄럽지 않은 것을 나누겠다며 다짐하지만 정작 우리가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들은 작고 소박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우리가 가진 재능과 우리가 그동안 받은 물질적, 정신적 토양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참 감사할 것이 많지만 우리는 그것을 당연함으로 생각하며 쉽게 잊어버리고 산다. 그렇게 가까운 이웃이 부족한 것을 자신이 채워주는 모습에 포장된 나눔만을 추구하며 정작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에 대한 작은 것은 무시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시하며 나눌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누리며 받은 수많은 재능들은 과소평가되며 누군가에게 분명 도움이 되고 나눔이 될 수 있음에도 아직도 조명되지 않고 묻혀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자. 그것이 아무리 보잘 것없고 가치없어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값지게 만드는 것은 나의 평가가 아닌 내 주변의 이웃들에게 얼마나 나눌 수 있는가 살피는 사랑의 마음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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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 꿈꾸는 타자기

일상 다반사 2011/09/11 13:00
위치: 미아삼거리역 현대백화점 뒷편 


미아삼거리역에서 현대백화점 뒷편으로 가면 꿈꾸는 타자기라는 카페가 있다. 약 20~25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많은 책들과 아가자기한 소품으로 꾸며진 카페이다. 들어가면 고양이가 반겨주지는 않고 그냥 멀뚱하니 처다본다. 


편의성: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자체 무선랜을 가지고 있고 암호로 보안이 되어 있으니 문의하면 암호를 알려준다. 무선랜 속도도 빨라서 작업하는데 끊기거나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창가쪽 자리와 가운데 책상 자리에는 전원을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되어 있고 무릎 담요도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에이컨 시설도 잘 되어서 쾌적한 환경에서 노트북 작업하기 편한 공간이다.

무엇보다 다량의 책들과 특히 장편소설이나 만화책의 전집이 구비되어 있어서 정기적으로 와서 전편을 다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창가쪽 의자는 높이가 있어 약간 불편할 수 있었으나 가운데 책상과 일반 테이블 자리의 의자는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쿠션도 준비되어 있어서 장시간 작업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화장실은 남여 공용 1인 좌식 화장실로 휴지, 페이퍼 타올, 세정제 모두 잘 구비되어 있고 살짝 작은 공간이지만 규모에 적당하고 위생적인 화장실 청결 상태를 유지하였다. 


음료 및 먹거리: 빵, 토스트 샌드위치 등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고 음료는 약 5000원 내외의 가격을 가지고 있지만 음료 시킬 때마다 간단한 쿠키도 같이 주신다. 시켜본 음료는 시나몬 향이 나는 바닐라 라떼인데 깔끔하고 무엇보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함께 나오는 모습이 맘에 들었다. 


고양이가 있어서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을 보아와서 그런지 귀엽다고 만져 줘도 그냥 개무시하고 혼자서도 잘 논다. 고양이가 두렵거나 맞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노트북 작업하기에도 편하고 친절한 서비스와 편안하게 시간 보낼 수 있는 공간과 창가에 흐르는 햇살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다양한 책들을 구비하고 있어서 부담없이 책하나 집어 책을 보는 시간을 가지기에도 부담없는 공간이다. 



총평

위치접근성: ★★★☆☆
전원 및 무선랜: ★★★★★
화장실: ★★★★☆
음료 및 먹거리: ★★★★☆
유의사항: 고양이가 어슬렁거림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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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변] 쓸모없는 구슬에 대해서...

일상 다반사 2010/11/10 18:56
오래전에 중국에서 옥을 수입해와서 한국에 팔려고 하신 적이 있으셨다. 당시 옥에 대한 수요보다는 중국산이라는 점 때문에 사람들이 찾지 않고 결국 그 옥들의 잔해들은 거실에 그 누구도 쓰기 부담스러울 정도의 옥 매트 (옥과 실로만 이루어진 마치 진시황제 시절의 갑옷을 연상시키는 모양의 매트) 와 그리고 수없이 많은 옥 구슬들이었다. 

결국 큰 손해를 입고 집안 한구석에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게 가지고 있던 옥 구슬들. 어떻게 쓸까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쌓여 있던 그 옥구슬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약 2여년전 내가 묵주 공예를 시작하면서였다. 

토마스 성물방 : http://rose.reasonomics.com

몇몇 지인들 선물로 주기 위해 만들어본 묵주 공예는 의외로 내 적성에 맞아서인지 여러가지 응용도 하고 다양한 묵주를 만들어 아마도 지금까지는 300여개는 넘는 묵주를 선물로 사람들에게 준 것 같다. 그 와중에 그 애물단지 같던 옥구슬들은 모두 묵주 재료로 잘 쓰일 수 있었고 그냥 미움받으며 쌓여있을 운명이었을 지 모르는 그 구술들은 누군가의 손목에 손에 쥐어져 지금도 기도하는 좋은 도구로 빛을 내고 있을 것이다.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많은 구슬을 아버지가 가져오실 줄... 그리고 안 팔리고 우리집에 그렇게 쌓여 있을지... 그리고 내가 우연한 기회에 묵주를 만들 생각을 했을 줄이야 그리고 또 그것을 통해서 그렇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 줄이야... 

그 모든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쉽게 낙담하고 '왜 하필...' 혹은 '왜 그런 것을 해가지고...' 하는 후회보다는 그래 언젠가는 쓰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안에서 자신을 긍정의 정원에 내 놓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당장 쓰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가워 하지 말고 급하게 후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능도 자신이 배운 것 그리고 그 어떤 것이든 그 쓰임이 당장이 아니라고 해서 쓸모없음으로 몰아 내면 결국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사실 이런 오묘함 때문에 종교에서 말하는 신을 떠나 분명 우리를 오묘하게 깨달게 해주는 그 어떤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믿게 된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눈으로 실망하고 낙담할 때 결코 그 것이 실망할거리도 낙담할 거리도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는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내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지 그것이 어떻게 쓰일지 계산하며 사용하면 결국 자신의 욕심에 그 어떤 것도 채우지 못하고 후회와 미련만 가득해질 것이다. 인내하며 기다리면 언젠가는 꽃피우게 해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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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변] 껌과 영수증 종이

일상 다반사 2010/11/08 06:15
늦은 밤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사람도 별로 없고 마침 하차문 바로 앞에 좋은 자리가 비어 있어서 별 부담없이 앉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습관처럼 창가쪽으로 기대고 가고 있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기 위해 몸을 버스 안쪽으로 움직였을 때 뭔가가 나를 땡기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습관처럼 자리에 앉자마자 외투를 벗은 상태여서 오른팔에는 누군가가 붙어놓은 찐득거리는 껌이 니트에 엉켜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난 아직도 그 때의 그 생생한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몇 안되는 사람들이었지만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바보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런 짓을 하는 놈은 누구일까... 등 아주 더러운 기분에 마치 내 인격이 이 껌하나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더러운' 껌을 손으로 떼어내기도 싫어서 어떻게 해야하나 싶어 결국엔 잘 떼어 내면 될 것을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니트를 쓰레기통에 던저버리고 말았다. 

첫번째로 기분나쁜 건 누군가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의도적으로 붙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두번째는 그 누군가를 잡기 힘들다는 것에 더욱 더 화가 났고 세번째는 그 피해자가 하필 나라는 생각에 머리 끝까지 올라온 화를 참지 못하고 그 하루를 제대로 마감하지도 못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 화에 스스로 견디지 못한 나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야만 했고 대부분은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한 사람들에게 그 화의 악영향이 전달된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삶에 힘든 과정도 지나가고 그리고 화내는 데 너무도 익숙해서 결국 내 스스로에게 가장 많은 학대를 하며 분을 이기지 못하는 나에서 세상에 순응하며 결국 화를 내는 것은 내 스스로를 미워하는 결과라는 것을 차츰 느끼게 되고 나서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에서 뜻하지 않은 아픔을 느끼고 나서부터 결국 화의 피해자는 일차적인 피해자는 나이고 두번째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상처준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그 긴 분노의 투쟁이 끝나갈 무렵... 

신기하게도 똑같은 버스에서 그리고 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껌은 막 누군가의 입에서 나와서 여름의 열기에 더욱 더 찐득하게 녹아 버려있는 상태였고 당시 입고 있던 양복에 아주 걸쭉하게 묻어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과 달랐고 결코 그 무의미한 껌에게 화도 내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손으로 최대한 떼어낼 수 있는 한 떼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예전에 분노하고 느꼈던 그 더러움이나 존재할 필요도 없었던 수치심이나 바보스러움의 느낌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차분히 떼어내고 버스 벽면에 아직 남아 있는 껌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하겠어서 지갑에 있는 영수증으로 그 껌을 눌러서 더이상 누군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 바라며 영수증을 붙었다. 

혹시 누군가 그 영수증을 보면서 고마움보다 '뭐 이런게 있어'하며 화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이해해줄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혹시나 그것을 보고 불쾌하거나 화가 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대한 죄책감까지 느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화를 참을 수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번째는 화를 통해 자신을 미워하거나 분노를 참지 못하여 자신 스스로에게 주는 상처를 막을 수 있는 길이고 두번째는 조금더 침착하게 내가 겪는 상황에 대해서 바로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는 것이다. 자신의 분노에 어떻게 하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결국 스스로에게 더욱 더 부끄러운 행동이 된다는 것을 화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잘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화내지 않아도 되는 것에 이유를 만들면서까지 화안에 갇히려고 한다. 

바꿀 수 없는 것에 화를 내고 자기 맘에 들지 않아 화를 내고 그리고 그 화에 노예가 되어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불안정하게 움직이며 사람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는지 알게 된다면 그 복잡하게 힘든 길을 일부러 가고 싶어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바로 화와 분노를 스스로 만들며 그 안에서의 행동에 대해서 떳떳하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화와 분노를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사람일 것이다. 

비록 화내야 할 백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결코 자신을 위해서 화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껌과 같이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주변에 수많은 시간과 공간안에서 영수증 같이 나를 보호해주려는 많은 손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면 좋겠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과 고통이 다가왔는지에 대해서 분노를 가지는 것보다는 그 안에서 내가 모르게 받고 있는 따뜻한 손길을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다면 내 안의 분노는 곧 사라질 것이고 그 여유는 아마도 자신을 더욱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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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변] 내 자식에게 자비로움을 가르치고 싶다.

일상 다반사 2010/11/04 16:34
올해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국에서 시작된 '빅이슈'라는 잡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빅이슈 코리아 블로그 : http://bigissuekr.tistory.com/ 

홈리스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잡지값 3,000 원중 1,600 원을 수입으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판매에 따라서 수입원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그러나 모든 홈리스들이 판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판매원이 되어도 수칙을 맞게 판매하지 않았을 경우엔 판매원 자격을 박탈하기도 한다. 

여러가지 문제점도 지적할 수 있지만 일단 구걸을 통해서 도박이나 술 등으로 빠지지 않고 자활이라는 목적성을 분명히 가지고 시스템적인 재활 구조를 가졌다는 점에서 일단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잡지의 내용도 기존의 상업적 잡지와는 다르게 광고의 양도 제한적이고 다양한 내용으로 다양한 독자층의 관심을 가지게 하려는 노력도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소개팅으로 만났던 어떤 친구는 항상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천원짜리 몇장을 항상 넣고 다닐려고 했다. 왜 그런지 몰랐지만 길거리에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그 천원으로 바로 바로 줄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길거리에서 도움을 청하는 분들을 볼때 전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거나 혹은 그런 마음이 들어도 머뭇거리기 쉽다. 그리고 가끔 어떤 사람들은 '주지 않는데 합당한 이유'를 붙이려고 한다. 조직적으로 돈을 모으는 사람이다. 저렇게 해서 우리보다 더 잘 산다. 등등... 사실 그런 '주고 싶지 않은...' 이유가 많은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양심이 있다는 반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Photo from Life Magazine : http://www.life.com/image/2500143


자활과 재활의 목적을 가지고 빅이슈를 파는 판매원들을 볼때마다 나는 하나씩 구입하려고 한다. 분명 그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번 구매하다가 든 생각이 바로 내 자식이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할 때 자식의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그런 판매원들을 보게 되었을 때 지갑에서 과감하게 돈을 꺼내 자식의 손에 쥐어주고 판매원에게 잡지를 사게 하는 연습을 시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아이는 그 잡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그리고 그 돈의 의미가 어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렇게 자식들의 손에 돈을 쥐어주며 그렇게 하도록 시키고 싶다. 그리고 내 자식이 조금씩 그 의미를 깨달게 되고 자신이 만든 자선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이미 익숙해진 그 행동으로 내 자식들이 그렇게 누군가를 돕는데 '불편하거나 익숙하지 않아' 머뭇거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누군가를 돕는데 머뭇거리고 나에게 합당한 백가지 이유를 생각해내도 내 몸은 이미 돕고 있는 그런 아이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서 누군가 도움을 청할 때 도와주어야 한다는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당연히 도와야지 하는 습관이 될 수 있는 자식이 된다면 학원에 보내 공부시키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빛이 되는 자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일 모레는 인도의 디파밸리(Deepavali) 축제일이다. 빛이 어둠을 이긴 인도의 축제날이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긴적이 없고 세상의 빛은 어둠이 짙어질 수록 더욱 더 빛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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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변] '내' '주'변만이라도 '변'화시키기

일상 다반사 2010/11/04 16:03
내주변이라는 프로젝트... 

어린 시절 내 힘으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능력이 좋아서도 그리고 처음부터 영향력있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패기와 열정으로 세상은 바뀌어지고 내가 원하고 그렸던 세상처럼 바뀔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 

지금은 이미 세상이 그렇게 작은 공간도 아니고 아무리 옳은 일이고 정당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대로 모든 사람들이 따라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리고 오히려 사람들은 정의나 바른 일보다는 오히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먼저 추구하는 것이 현실의 모습이라는 것을 매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리 쉽게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고 느끼는 것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그냥 내 버려두자 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느 한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너무도 쉽고 너무도 간단한 사실을 깨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내 주변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가지는 바른 생각과 행동을 넓은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범위라도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지는 생각을 그저 작은 범위에서라도 이야기하고 그것에 공감된다면 그리고 그 공감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그래서 '내주변' 프로젝트를 통해서 내가 지나오는 그 삶의 거리에서 보고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들을 삶의 오묘함과 즐거움을 한번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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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변] 세상은 보물찾기와 같은 것...

일상 다반사 2010/10/16 06:17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한 정거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성급히 내렸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함을 인정했다. 피곤한 마음에 짜증도 났지만 누구를 향한 짜증이겠는가. 

아예 몇 정거장 더 지나서 다시 돌아오는 버스를 탔으면 더 좋았을까? 하는 여러가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열심히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서 걸어가는 길, 키 높은 가로수 사이로 오랜지색 가로등은 비추고 내 앞에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를 보았다. 부끄러워 주머니에 손 넣고 가는 남편의 팔에 매달린 모습이 아니라 손을 잡고 보폭을 맞추기 위해 남편분은 조금은 어색한 걸음을 하면서... 

한 정거장 지나서 내렸다는 짜증보다 지나길 잘 했다는 묘한 기운을 느꼈다. 

누군가의 섬세한 조작으로 시간과 공간을 그 아름다운 노 부부와 겹칠 수 있게 했다는 기운을 가지고 한참동안 따라가며 보았다. 

삶은 이러한 보물찾기의 연속인 것 같다. 그래서 당장 내 앞에 닥친 일들이 마음에 안들어 화내고 짜증내기 보다는 한번쯤 참고 걷다보면 마음의 단비처럼 가슴이 멍해지는 장면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보물찾기와 같은 것... 

그저 오늘도 그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눈과 귀를 허락해주시기를...

photor from http://alster.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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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장애우와 핸드폰 통화하는 여인

일상 다반사 2010/03/21 04:42


언젠가 버스타고 가는 길에 뒷자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내는 소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은데 불규칙적이고 고음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듣기에는 거북할 수 있는 고함 소리와 함께 욕설비슷한 거친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자 기사 아저씨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그 사람에게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야! 조용히 좀 하라고! 시끄러워서 운전을 할 수가 없잖아!"


한바탕 기사 아저씨도 욕만 안 섞었지 소리 지르면서 그 소리를 내던 사람에게 화를 냈던 것이었다. 나도 무슨 일인가 바라보았고 이내 그 사람이 '틱장애 (tic disorder)' 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운전기사 아저씨가 화를 내는 과정에서도 불수의적인 근육의 움직임이 보이면서 눈의 깜박이는 횟수가 일반인들에 비해 빈번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알 수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일어나 그 아이의 대변인인 것처럼 아이의 상태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런 행동 및 말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기사 아저씨와 승객들은 나의 이야기에 어느정도 이해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얼굴 안에서는 불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오히려 운전에 방해되는 것은 사실이니 오히려 나에게 어떻게 해보라는 것이다.


마땅히 할 것이 없는 나는 그 아이의 옆에서 반복적인 틱 행동에 대해서 조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외엔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을 끄는 사건은 그 이후에 발생하였다. 하차하는 문 바로 앞에 앉은 20대 쯤의 젊은 아가씨 한명이 전화를 하면서 정말 모든 승객이 다 들을 정도의 목소리로 하루의 쌓인 스트레스를 풀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그 아가씨는 방금 전 있었던 버스 안의 상황과 틱 장애를 가진 아이를 '병신같은 얘'라는 표현을 하면서 친구에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솔찍히 그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는 나를 제외한 많은 승객들은 그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들으면서도 그리고 시끄러우면서도 그냥 무시하면서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까는 그 순간 순간의 틱 장애로 인한 소음조차 듣기 싫어하던 기사 아저씨도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아가씨의 전화는 대충 5분 가량을 넘어가고 있었고 일상에 대한 반복적인 이야기로 집중하고 있었다. 소음의 질과 양으로도 틱 장애 아이의 것보다 탁월히 우수(?)했었다.


듣기 거북한 나는 결국 아이의 곁을 떠나 앞으로 가서 그 아가씨에게 최대한 정중하게 얘기했다.
 
"아가씨 혹시 수다떠는 틱 장애 가지고 계신가요? 그럼 이해해드리고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조용히 해주세요."


결국 그 아가씨는 "별꼴이야 뭐 이런 XX가 있어!" 라는 정감어린 소음을 듣고 내리는 것을 보고 조용한 버스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아이도 곧이어 내리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내렸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옆에서 누군가 난처한 일에 당할 때 도와주려고 하기 보다는 그냥 지나치고 싶어한다. 그리고 괜히 불쾌해질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불쾌함을 느껴도 그냥 맘으로만 불쾌해하고 고치려 하지 않는다. 틱 장애를 가진 아이와 수다떠는 아가씨를 보면서 남들을 위한 배려는 어쩌면 남의 상황을 이해하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수용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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