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해당되는 글 46건

  1. 2011/11/22 세상에 상처와 이별이 있는 이유는...
  2. 2011/09/30 [내주변] 나눌게 없네요...
  3. 2011/09/05 인내는 기다림이 아닌 과정임을...
  4. 2011/06/21 이기기 원하는가, 행복하기 원하는가.
  5. 2011/05/22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6. 2011/05/03 나의 어머니는 곰보입니다.
  7. 2010/10/16 [내주변] 세상은 보물찾기와 같은 것... (1)
  8. 2010/10/11 환난이 다가와도...
  9. 2010/09/06 아름다운 세상
  10. 2010/07/22 희망이란 무엇이어야 할까? (나의 소명을 찾아)

세상에 상처와 이별이 있는 이유는...

원준이 생각 2011/11/22 21:54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처받지 않는다. - http://v.meson.kr/mbn2GX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말로 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 안에서 자신의 사랑을 위해 부족함을 표현할 것이다. 

◈ 첫번째 에피소드 

상처가 많은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도 힘들게 보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자신이 해야하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하는 것들이 더 많았던 사람이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항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 늘 사람들로 부터 사교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을만큼 쾌활하고 유쾌한 모습을 유지한다. 그래서 그 사람 주변엔 항상 사람이 많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첫인상도 그늘 진 모습보다는 유쾌함에 묻어 나오는 선입견인지 사람들에게 호감을 더 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밝은 모습과는 달리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 부터 상처도 많았다. 그 사람에게 그 상처는 항상 이겨야 하는 대상이었다. 어떤 기회를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솔찍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고백을 통해서 자신 만이 가지고 있는 짐이 덜어지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받아왔던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을 마치 두통에 필요한 진통제를 먹듯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위로를 받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갔다. 

그러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이 자신보다 더 큰 상처나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뭔가 풀리지 않는 욕구를 느끼게 되었다. 마치 진통제를 먹어 지울 수 있을 것 같은 두통에 소화제를 먹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받지 못하면 그 관계의 본질이 이루어지지 않는 느낌으로 자신의 주변엔 자신보다 상처가 덜하다고 생각하거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들을 모으게 된다. 


◈ 두번째 에피소드 

사람간의 이별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별이라도 거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날 아버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사별에 있어 그 이유가 사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사고의 현장에 아버지가 그 시간 그 곳에 있을 이유까지 찾을 수는 없다. 이미 끝나버린 이별에 매달리며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해하기 힘든 이유를 찾으려고 말이다. 연인과의 이별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차이든(dumped), 차든(dumping) 항상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별의 이유라고 찾은 것들을 보면 대부분 상대방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해서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를 하면서 과거의 상대방을 평가하며 상대방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자신은 항상 옳은 판단과 행동을 하면서 살았지만 상대방이 모든 원인 제공을 했고 나는 참을만큼 참아보았고 그러다 어쩔 수 없이 라며 그 이별의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이별이 비참해지고 누군가 물어보는 '왜 이별했어?' 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것 같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나는 이별을 통해서 성숙하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며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위로와 감정의 동감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진실했고 그 진실의 반대편에 상대방은 항상 진실하지 못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때는 다 이해했던 구체적인 행동들을 꺼내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답지 못하다. 상식이하라며 자신의 심미적 감정의 기준을 대어 하나하나 판단하며 그 큰 맥락이 결국 상대방은 나쁜 사람이라 이별이 생긴거라 이야기 한다.




 
... 상처를 받음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변명일 수 없다. 


스스로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본질적인 상처를 꺼내는 것은 더욱 더 어렵다. 대부분 상처를 받게 되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과거를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뿐이다. 그 누구도 나의 상처를 다른 이에게 완전히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이다. 부모의 학대를 받은 여러 명의 아이들이 모여도 그 상처는 사람 수만큼 다르다. 아마도 같은 부모의 학대를 받은 형제남매라 할지라도 다를 것이다. 그만큼 사람은 상처에 대한 각기 다른 수용과 감정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A 라는 아이는 그 상황을 탓하며 자신의 방이 없어 공부할 수 없음을 상처라 이야기할 수 있는 반면 B 라는 아이는 자신의 방이 없기 때문에 가족들과 살겹게 보낼 수 있다는 행복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상처란 절대적으로 이것이 상처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처는 자신이 스스로의 마음의 빗장을 열기 전에는 상처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넌 왜이리 못생겼어'라는 말 자체가 상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받아 들여 '내가 못생겼다' 라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상처로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

첫번째 에피소드로 잠시 넘어와서 자신의 상처를 나누는 사람에게는 크게 두가지의 유형이 보인다. 첫번째는 그 상처를 통해 상처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남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그 반대편엔 자신의 상처를 좀더 들어달라는 더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아무리 힘든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이것이 상처다 저것이 상처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을 얻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후자는 자신의 상처와 항상 비교하며 남의 상처를 판단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상대방이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해도 자신의 이야기로 귀결되며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상처에 대한 비교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통해서 남에게 상처주면서도 '나도 이정도 상처 안에서 살았는데...' 라며 남에게 쉽게 상처주곤 한다. 

이야기의 패턴은 항상 비슷하다. ① 나는 이런 상처를 받았다. ② 나름 많은 고민과 노력으로 성장하였다. ③ 다른 이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비교 분석한다. 상처는 치유하고 내적 성장을 위해 존재할지 모른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이해하라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자신의 상처를 남의 상처를 비교하고 판단하는데 사용한다면 그 상처는 하나의 독이 될 것이다. 상처는 치유되어야지 판단의 근거가 되서는 안될 것이다. 


... 자신의 진실함을 핑계로 상대방의 순수성에 대해서 판단할 수 없다. 


배려란 참는 것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 만나서 싸우지 않았다는 것은 두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둘 모두 자신의 이야기하지 못하고 참아오거나 두번째는 정말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경우. 둘 모두 그리 정상적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 만난다는 것은 그래도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상대방을 통해서 나와 서로의 관계를 찾아가는 하나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별의 시작은 그러한 서로에 대한 기대와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그런 접점을 찾기 힘든 경우일 것이다. 사실 이별의 시작은 다양할 수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든, 성격적인 이유든, 그 이유는 그냥 이별을 시작하기 위한 하나의 핑계일 뿐이지 대부분 자신이 기대치에 대한 실망감이 가장 클 것이다. 그 구체적인 항목이 무엇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 이별또한 아픔이고 상처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헤어지고 서로가 남이 된 상황에서 가장 재밌는 것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상당히 객관적인 자신을 설정하고 이별의 이야기를 자신의 주변에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나는 이별의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항상 진실해왔으며 상대방에 대한 상황과 행동을 자신의 지인에게 이야기하면서 수많은 동의를 구한다. 나는 진실했고 여러가지 상황을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사람 그때 그런 행동들은 정말 인간 이하의 행동이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며 자신이 이별의 당연함에 동의를 구하게 된다.

대부분 자신의 행동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판단과 기준에 맞춰 상대방을 잘못된 사람으로 만들고 그 대부분의 결론은 상대방은 원래 진실하지 못했고 상대방은 순수하지 못하다를 결론낸다. 그렇게 나쁜 경험을 했다고 하면서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동정과 연민을 얻어내면 자신의 마음이 수월해질 거라고 믿는다. 그런 소모적인 판단으로 자신의 만남에서 자신은 진실하고 상대방의 순수성은 더럽히는 것이 자신이 이별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노력한 내용들에 대해서 부연설명하며 자신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상대방의 순수성을 판단하면서 자신이 순수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만에 가깝다. 이별의 순간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성찰만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착하고 진실하게 되기 위해 지나간 인연에 대해 순수하지 못함을 가쉽하는 그 행동은 진실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성찰은 토론이 아니다. 누군가의 동의가 이별에서 자신이 옳았다고 판단하고 외치면, 그 어떤 만남에서 누군가를 배려할 수 있을까. 이별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잘못된 만남의 해소일 뿐이다. 



자신의 상처가, 자신의 이별이 누군가를 판단하는 근거로 작용한다면 몇번의 상처와 이별을 통해서도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 판단은 항상 자신을 기준으로 남을 바라보는 기준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서 결국 몇번이고 실패라는 냉소만 쌓이고 고요함 안에서의 자신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동정과 동의만을 통해 잠시 아픔을 잊게 하는 진통제만을 먹는 효과일 뿐이다. 

자신의 상처로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주며 다른이의 상처를 판단하는 사람들과
이별의 순간을 다른 누군가에게 얘기하며 다른이의 영혼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묘하게 재미있는 교차점을 가진다. 그것은 침묵 안에서 들릴 수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듣기보다는 다른 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듯 하지만 결국 다른 이를 판단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무엇을 원하고 갈망하는 것은 많아도 다른 이를 위한 배려는 배우지 못한다.

내 안에 있는 이런  모습들을 지우기 위해 성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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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변] 나눌게 없네요...

일상 다반사 2011/09/30 02:56
서점에 갔다. 모두들 책을 찾고 책을 보느라 분주한 그 곳에서 우연히 들려오는 책 읽는 소리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일까 귀기울여 찾아간 곳엔 엘레베이터 옆에 악세사리를 파는 곳에 계신 점원 분께서 청소를 담당하는 어떤 분이 쉬는 중이셨는지 악세사리 판매 점원 분이 읽어주는 책에 경청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 읽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고 당연하다고 느낄 그런 우리나라에서 설마 글을 읽지 못하는 분이 계실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래도 고단한 삶에 아직 배움을 이루지 못해 글을 읽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 있을거라는 이해를 하고 좀 더 서성거리며 나도 모르게 경청하게 되었다.

점원 아주머니는 정말 혹시나 한글자라도 놓칠까 또박 또박 읽어주시면서 정성들여 낭독하는 모습이 가득하였다. 순간 나도 모르는 전율이 느껴지며 자신이 가진 작아 보이는 재능, 아니 어쩌면 그 누구도 재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능력을 가지고 그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너무 큰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감동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겨울에 길목에 있는 가을의 풍경과 그 풍경 안에서의 많은 정물들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산문시였던 것 같았다. 미소를 지으며 듣고 계시던 분께서는 이내 이렇게 느낌을 말씀하셨다.

"가을의 돌들이 겨울의 시작을 의논하는군요. 고마워요" 

뭔가 정리되지 않은 듯 그러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대답도 가슴이 뭉쿨했지만 무엇보다 저런 나눔도 있구나 하는 작은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 

출처: 영풍문고


내가 가진게 뭐 있다고 나눌 수 있겠어... 
조금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라는 핑계 안에서 우리의 나눔에 대한 핑계를 대며 너무도 많은 것을 가진 우리들의 모습과 겹치며 정말 무엇인가 값지고 좋은 것 남들 보기에 충분하고 부끄럽지 않은 것을 나누겠다며 다짐하지만 정작 우리가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들은 작고 소박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우리가 가진 재능과 우리가 그동안 받은 물질적, 정신적 토양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참 감사할 것이 많지만 우리는 그것을 당연함으로 생각하며 쉽게 잊어버리고 산다. 그렇게 가까운 이웃이 부족한 것을 자신이 채워주는 모습에 포장된 나눔만을 추구하며 정작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에 대한 작은 것은 무시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시하며 나눌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누리며 받은 수많은 재능들은 과소평가되며 누군가에게 분명 도움이 되고 나눔이 될 수 있음에도 아직도 조명되지 않고 묻혀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자. 그것이 아무리 보잘 것없고 가치없어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값지게 만드는 것은 나의 평가가 아닌 내 주변의 이웃들에게 얼마나 나눌 수 있는가 살피는 사랑의 마음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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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는 기다림이 아닌 과정임을...

원준이 생각 2011/09/05 21:16
인내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가능하다면 없었으면 하는 순간 중에 하나일 것이다. 우연히 본 영화 중에 Arthur 라는 영화가 있다. 


억만장자 집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여자를 버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집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시키는 결혼을 포기하자 자신의 모든 재산마저 포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찾아 떠난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단순 코메디에 내용도 단순하고 그다지 내용도 흥미진진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마지막 결혼식에서 Arthur 가 혼인 서약을 하는 순간 결혼을 하객들 앞에서 거부하자 신부가 심한 독설과 함께 "돈을 위해 결혼하지 너 같은 멍청이와 누가 결혼하고 싶냐"고 소리지르고 적당히 정리되고 Arthur 는 자신이 원하던 여인에게 달려가게 된다. 

어느 누구도 인내는 피하고 싶은 테마이다. 가능하면 쉽게 되고 싶고 걱정과 고민없이 선택하고 살아가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가능하다면 재력이 되는 집에 태어나 원하는 것 마음대로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하고 싶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한편으로는 참고 그 영광을 위해 기다려야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쉬운 길과 타협하고 싶은 마음이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게 자수성가한 인물을 보면 한편으로는 힘을 얻고 용기를 얻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와는 상황이 달라 어떻게 저렇게 하겠어 하며 체념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탓하며 포기하면 분명한 것은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외계 지적 생물체를 찾는 프로젝트를 하던 사람들에게 "정말 가능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까?", "성공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을 때 프로젝트의 과학자들은 논문을 통해 대답했다. ( http://blog.meson.kr/182 )

The probability of success is difficult to estimate; 
but if we never search, the chance of success is zero.
성공 확률은 가늠하기 힘들 것이다. (상당히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우리가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그 성공 확률은 분명 0% 이다.  

Cocconi, Giuseppe; Morrison, Philip, Nature, V(184), I(4690), pp.844-846 (1959)

시도하지 않는다면 중간에 포기한다면 성공확률은 바로 0% 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참고 견디어 내어 계속 할 수 있다면 그 확률은 0.000001% 라 하더라도 존재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목표에 도달하려는 수많은 시도는 우리에게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의도해서 성공한 것보다 의도한 것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서 성공을 이루는 과정이 더 많기 때문이다.  

비단 이러한 인내의 효과는 과학적 발견이나 학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영화에서와 같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의 관계에서 서로의 맞지 않는 부분때문에 서로 상처받고 자신이 손해보면서 살아간다고 믿으면서 자신은 참을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항상 상대방은 피의자이고 나는 피해자라는 구도이다. 어느 날 한 신부님의 강론에서 이런 비유를 들어 이야기 하셨다. "두개의 서로 이가 맞지 않는 빨래판이 딱 달라붙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정답은 서로가 맞을 때까지 소리내어 갈리고 부딪치고 닳아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아픔과 고통의 관계 안에서 어려운 상황이 다가오면 그리고 그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인간은 자신이 드러내기 싫은 본성을 들어내기 마련이다. 그 본성이 나쁘다 좋다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숨겨오던 그 본성은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방을 비이성적으로 상처주기 마련이다. 

그러한 과정을 인내의 과정으로 비유한다면 위기의 순간까지 서로 겪어봐야 서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필요한지 알 수 있게 되는지 모른다. 그래서 연인들도 이별의 순간엔 서로가 보지 못했던 모습에 실망하고 그 실망이 인내로 견디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그 순간의 반복과 기억으로 이별을 고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그래서 인내의 열매가 값진 이유는 인내가 요구되는 순간에 서로가 피해야할, 보지 말아야 하는 본성을 서로 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은 얼마든지 척하면서 살 수 있지만 그 인내의 순간은 그렇게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본성을 알았지만 그 본성마저도 이해하고 적이 아닌 나와 같은 마음으로 믿어주고 다가갈 때만 그 달콤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닐까. 

그 어떤 과일도 햇볕에 익어가기 전에 과육은 쓴맛을 가진다. 욕심에 인내하지 못하고 그 열매를 따서 먹으려고 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은 기대했던 달콤함이 아닌 쓴 맛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인내는 기다림이나 무조건 참아야 하는 나를 괴롭히는 존재가 아닌 나에게 더 달콤함을 주려는 햇살과 같은 존재이다. 어떤 과정도 씨앗이 바로 과일을 맺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인내는 기다림이나 견딤이 아닌 과정이고 필요한 과정이다. 짐같고 없으면 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인생의 과정이 힘들어도 해볼만한 용기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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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사랑,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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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기 원하는가, 행복하기 원하는가.

원준이 생각 2011/06/21 17:44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의 열쇠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만 없으면...", "저 사람은 왜 항상 저 모양이야..." 그렇게 대부분 자신의 화나 잘못의 원인은 내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고 얘기한다. 

위기의 부부들이 가지는 4가지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 특징은 문제의 원인이 어느 한쪽에 있거나 도덕적이나 윤리적인 범주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은 오히려 감정적인 부분의 엇갈림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네가지의 특징은 

1) 비난하기 

"너가 항상 그렇지...",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해!", "너가 할 줄 아는 게 뭐야" 무엇인가 시작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작점이라고 부르는 것도 참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양말을 왜 아무데나 놓느냐 아니면 화장실 불은 왜 끄지 않고 나오냐는 등의 그런 생활 습관에 해당하는 일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은 습관적이기 보다는 순간의 실수를 비난으로 이어가기 때문에 오히려 그 원인이 되는 일들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당신은 왜 화장실 불도 안끄고 그래" (사실) "당신이 그렇지 맨날 그렇게 절약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해" (비난) 으로 이어지는 말과 

"당신 화장실 불을 안 껐내" (사실) "잊어버린 것 같은데 꺼주고 나오면 안되어요" 이라며 비난적 요소가 사라지면 오히려 내가 불을 안 껐구나 하는 부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다음 번에 그런 일들이 더 잘 상기될 것이다. 오히려 비난이 가해지면 화장실 불을 끌때마다 그 비난이 떠오르며 "내가 절약정신이 없다고? 아니 도대체 누구 돈으로 먹고 사는데" 하는 마음으로 비난에 대한 자기 방어적 요소가 더 떠오르게 될 것이다. 

2) 경멸 

비난의 단계가 반복되거나 심해지면 어떤 행동이나 사건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상대방의 인격이나 상대방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을 거론하며 경멸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상대방의 잘못이나 실수는 경멸을 위한 시작점일 뿐 중요한 건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미움을 포함한 원색적인 내용을 이야기 하기 마련이다. 

비난의 단계는 그냥 훈계나 일이 잘 되기 위한 하나의 합의를 위한 부분이지만 경멸의 단계에서는 상대방이 화장실 불을 꺼도 모든 것을 제대로 해도 흐트러진 수건이 맘에 안들면 상대방에 대한 경멸을 보이게 된다. 

어떤 말이나 행동도 다 맘에 안들고 이런 경멸의 단계에 들어서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경멸에 의한 서로간의 상처로 인해 이전에 사랑했던 모든 기억과 추억이 다 거짓이 되어버리고 사람 자체에 대한 증오로 인해 자신의 삶마저도 잃어버리고 삶에서 행복을 느끼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상이 경멸의 반복으로 인해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3) 자기 방어 

자기방어와 경멸은 거의 동시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경멸하는 상대방이 논리적이나 감정적으로 옳다고 생각할 수 없는 단계에서는 상대방의 경멸에 대해서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정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나에겐 잘못이 없고 상대방이 너무 극단적이고 일반화된 시각으로 나를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 때 상대방이 잘못되고 나에겐 잘못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언성은 높아가지만 실제로 합의에 이르거나 어떤 평화의 방법을 찾아내기 보다는 서로의 귀는 막아버리고 나의 이야기만 줄기차게 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서로가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바라보는 시선이 잘못되었으니 원인은 너에게 있고 너가 고쳐야 한다고 하는 원인 제공에 대한 분명한 시각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되면 될수록 자신의 주장은 항상 맞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자기 방어로 시작하게 되지만 사실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 상대방이 질 때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서로의 시각은 평행선을 긋게 되고 반복되고 똑같은 내용을 가지고 계속 싸우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바로 결과 / 과정에 대한 합리화이다. 결과가 잘못되어도 과정에서의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고 하고, 과정이 맘에 안들면 결과가 좋아도 과정에서의 잘못됨이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결국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는 심한 하소연과 자신을 지키고 싶은 자존심의 문제가 반복되어서 답답한 마음에 상대방에게 소리지르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똑같은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4) 무시  

자기 합리화의 과정이야 연인들 사이에서는 그냥 헤어지면 해결될 수 있지만 부부의 삶을 살고 있고 아이가 있는 상황이라면 평행선을 그으면서 살아가다가 결국 무시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서로 어떻게든 잘해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하던 그 단계에서 이제는 무관심으로 이끌어지면 서로에 대한 애정은 냉냉하게 식어버리고 서로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상황이 맞는다면 언제든지 이혼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무시의 상황에서는 어떤 해결을 위한 서로의 노력보다는 어떻게하면 피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정적인 활동에 점점 힘을 쏟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부정적 활동은 스스로도 더 힘들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특징이 자신의 관계가 비정상적이고 부정적인 관계로 가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이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새로운 시각을 보아야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일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대답에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이기기 원하는가? 행복하기 원하는가?"

상대방을 대한 나의 태도가 사랑의 표현이고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위의 질문을 하게 된다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행복하기 원한다고 할 것이다. 내가 상대방의 허물과 실수를 밝혀내 상대방을 원래 그런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고 상대방이 대꾸할 수도 없는 논리로 이기게 된다면 정말 나의 마음은 편하고 좋을 것인가? 결국 당신은 승리자가 되었지만 상대방은 패배자가 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내가 패배자가 되고 상대방이 승리자가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결국 그 누군가는 패배자가 되어버리는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랑하는 사람이 상대방이 패배자가 되길 바랄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을 비난하고 자기 방어하는 사이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한 노력은 절대 아닐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희생해가면서 누군가를 그렇게 패배자로 만들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당신의 모습 하나하나를 비난하고 항상 자기 합리화에 상대방을 패배자로 만드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가장 현명한 방법은 헤어지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은 한 사이라면 그리고 도저히 해결책이 없을 것 같아 헤어진다고 해도 사실 문제는 반복되기 쉽다. 왜냐면 문제가 나에게 있지 않고 상대방에 있다는 믿음때문이다. 다른 누군가를 만나도 똑같은 문제에도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또 비슷한 사람 만났다는 착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상대방이 패배하는 순간을 바라보며 희열을 느낀다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희열은 결코 사랑이 아닐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힘들고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는 것이지 어퍼컷을 날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상대방을 비난, 경멸을 하며 자기방어를 하고 심하게 되어 결국 서로에게 무관심한 상태까지 가게 된다면 그 책임과 원인 제공은 상대방에 있다는 파렴치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 결국 서로 패배자로 만들려고 하는 그 수많은 노력 속에 지치고 힘들어진 나와 너가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때문이다. 


언제나 이 질문에 대답해보자 

이기기 원하는가? 행복하기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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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원준이 생각 2011/05/22 01:19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남의 사랑을 무시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살찐 몸매에 불만을 가지고 그저 그 이유가 학업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였지만 그냥 신앙의 한 부분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을 뿐 이성 친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에게 교회의 한 오빠가 자신의 좋아하는 감정을 그녀에게 고백하였고 그녀는 어쩔 줄 몰라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한 체 그냥 그렇게 머뭇거리다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동안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 오빠는 왜 나를 좋아하는 것이지? 내가 어디가 이쁘다고 그러는 것일까?"
"내가 보아도 이쁜 구석이 없는데...." 


심한 고민에 빠진 그녀는 한참동안 고민을 했다. 

 

그 고민의 대부분은... 1. 나 또한 그 오빠를 좋아하는 것일까. 2. 그 고백에 대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보다는 도대체

 

"왜? 그 오빠는 어디가 나의 어떤 부분이 이쁘다고 하는 것일까?" 라는 고민이 대부분이 되고 말았다. 그런 고민 속에서 이렇게 못생기고 뚱뚱한데 왜 나를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것일까 하면서 결국은 "자신을 놀릴려고..."라는 소박하게 시작해서 나중엔 그런 생각에 휩싸여 심지어는 나를 사랑한다는 오빠에게 불쾌한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그 오빠는 가지지도 않은 순수한 사랑의 마음은 놀리기 위한 것이라고 그녀는 쉽게 평가하고 말았다. 그녀는 주변에 그 이야기를 가쉽거리로 이야기하고 말았다. 
 

"아니.. 세상에 그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나를 놀릴려고 그런 짓을 한것 있지..." 


결국 한 사람을 위한 사랑의 마음은 그렇게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고 말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다른 이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남이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게 허락할 수 있겠는가.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그 화려한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다른 이의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살아간다. 

 

우리들은 상처받을 때 우리들은 너무도 일방적으로 받는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누군가에게 줄 수도 있는 상처가 되는 말들은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인간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자신이 만들었던 남이 만들었던 그 상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순간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사랑하며 나를 살피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을 때 다른 이의 어떤 터무니 없는 말이나 모함에도 쉽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며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이라는 강한 자존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말도 안되는 평가를 받거나 나를 모르며 하는 이야기에 상처받지 않을 수 있게 된다면 남들도 내 말에 상처받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함부로 평가하는 말을 하지 않는지 항상 살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를 쉽게 하며 평가를 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자신의 어떤 부분을 남을 헐뜯고 험담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그 모습을 감추려고 하는 과정에 놓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다른 이에 대한 평가가 자신을 점점 헤치는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모른다. 

 

어렵게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명제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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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곰보입니다.

원준이 생각 2011/05/03 05:19

나의 어머니는 곰보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머니의 얼굴은 곰보입니다. 부드러운 피부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멀리서 보아도 정상인처럼 보이지 않으며 쭈글쭈글한 그 얼굴에 도수높은 안경까지 쓰고 계셔서 모르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눈빛을 피하며 멀리 갈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고 몇몇 사람은 어머니를 보면서 얼굴 찡그리는 모습까지도 서슴치 않고 표현하십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그게 익숙하지 않고 오히려 찡그리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어머니를 보면서 같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그렇게 어머니때문에 사람들이 나까지도 이상한 모습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많이 걱정하고 항상 어머니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어느날 어머니가 저 멀리에서 다가오며 나를 발견하셨나 봅니다. 그러나 내 곁엔 같이 하교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이쁘지도 않은데 괴물처럼 생긴 어머니가 나에게 아는 척을 할까봐 친구들을 끌어 다른 골목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무엇때문이었는지 살짝 뒤돌아 보았을 때 어머니는 이내 체념한듯 아니면 나를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땅을 바라보며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그런 표정보다 친구들이 어머니를 보고 놀라거나 혹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섰기 때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른 길로 제촉했습니다. 

그 이후 어머니는 길거리에서 나를 만나면 어머니 스스로 다른 길을 가시거나 일부러 애써 아는 척을 하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어머니는 나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이내 죄인같은 모습으로 어딘가에서 멀리서 나를 바라보시기만 하셨을 뿐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어머니를 초대하거나 어머니를 뵙고 싶다는 담임 선생님의 요청에도 나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어머니가 학교에 오시는 것을 막곤 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친구들에게는 전혀 불편하지 않은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며 때로는 사람들이 부러워할 상상 속의 어머니를 만들어 이야기하며 살아갔습니다. 

나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집안의 화재로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그 이후 화상치료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곰보가 되어버렸고 그 사고 이후 왼팔은 불편하게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만든 화재를 원망하기 보다는 그런 화재로 그렇게 되어버린 어머니를 두고 원망하고 나도 '정상인' 어머니가 있었으면 하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모든 원인은 어머니에게 있고 그런 결과로 내가 어머니를 떳떳하게 여기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 모든 것은 어머니의 잘못이었고 그 잘못때문에 나는 피하며 떳떳하지 못한 어머니를 숨기는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어느날... 그런 생각들이 나에게서 굳어지고 그런 마음이 굳어진 상태에서 어머니에게 대하는 나의 태도가 표현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때 화재를 생생히 기억하고 계시고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제까지 이야기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말해야 겠다는 말과 함께 그때의 이야기를 하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그때 이야기야 나도 잘 알고 있는데..." 라는 생각을 품고 있을 때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때 너희 엄마는 너가 품고는 불타는 목재 기둥이 엄마의 팔과 얼굴 가까이에서 타고 있는데도 너가 화상을 입을까봐 그리고 그 불길에 너가 다칠까봐 그 그 불기둥을 온 몸과 등으로 막아내고 있었단다. 너를 꼭 안으며 불길이 너의 곁으로 다가가지 못하게 말이야..." 

이내 말을 이어가지 못하시는 아버지는 서러운 눈물을 흘리시며 더이상 말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날의 사건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을 것도 있지만 어머니의 그 미련하고 바보같은 행동으로 나는 티끌하나 다치지 않고 상처도 입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만약 어머니의 입장이었다면 정말 내가 그렇게 불기둥에 살이 타는 아픔을 견디면서 아이를 지켜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으로,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하며 피하던 매 순간마다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멈춰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친어머니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순 시기를 지나고 부활절을 맞이하며 어느날인가 기도를 하다가 문뜩 들게 된 이야기입니다. 비록 저의 어머니는 곰보의 모습은 아니지만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어머니의 어떤 부분은 부끄러워하고 때로는 피하고 싶어하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어머니에게 상처같은 부분도 어머니는 자식을 탓하지 않으며 스스로 혼자의 몫으로 가슴내려 지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시대 대부분 어머니의 모습일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때문에, 우리의 죄로 인해 모욕을 받고 고통을 받았던 예수님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 안에 살아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돌을 맞아가면서도 하나의 원망도 없이 오히려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은 정말 무엇일까요. 

왜 이런 이야기가 기도 안에서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나의 어머니가 곰보인 듯한 느낌, 그리고 그 보기싫은 모습이 바로 나때문에 받는 어머니의 아픔이었다는 것을 느끼면서 진한 한숨과 알 수 없는 눈물만 가득했을 뿐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며 또 어머니가 부끄럽거나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자신의 아이를 위해 타는듯한 고통을 참아내는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싶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부끄러움... 그 무엇이든, 사랑은 이겨낼 수 있을만큼 충분한 그 무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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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변] 세상은 보물찾기와 같은 것...

일상 다반사 2010/10/16 06:17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한 정거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성급히 내렸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함을 인정했다. 피곤한 마음에 짜증도 났지만 누구를 향한 짜증이겠는가. 

아예 몇 정거장 더 지나서 다시 돌아오는 버스를 탔으면 더 좋았을까? 하는 여러가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열심히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서 걸어가는 길, 키 높은 가로수 사이로 오랜지색 가로등은 비추고 내 앞에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를 보았다. 부끄러워 주머니에 손 넣고 가는 남편의 팔에 매달린 모습이 아니라 손을 잡고 보폭을 맞추기 위해 남편분은 조금은 어색한 걸음을 하면서... 

한 정거장 지나서 내렸다는 짜증보다 지나길 잘 했다는 묘한 기운을 느꼈다. 

누군가의 섬세한 조작으로 시간과 공간을 그 아름다운 노 부부와 겹칠 수 있게 했다는 기운을 가지고 한참동안 따라가며 보았다. 

삶은 이러한 보물찾기의 연속인 것 같다. 그래서 당장 내 앞에 닥친 일들이 마음에 안들어 화내고 짜증내기 보다는 한번쯤 참고 걷다보면 마음의 단비처럼 가슴이 멍해지는 장면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보물찾기와 같은 것... 

그저 오늘도 그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눈과 귀를 허락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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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이 다가와도...

원준이 생각 2010/10/11 04:14
너무도 풍요롭게 생활하기에 죽음의 두려움보다 삶의 고난에 힘들어 하게 되고... 

먹는 것보다는 맛있는 것을... 
입을 것보다는 멋있는 것을... 

찾게 되는 삶의 한 가운데 누군가의 꿈 이야기로 사랑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피곤한 주일의 일과를 마치고 나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 몸을 맡기고 일어나서 원하는 정류장에 내려야 한다는 걱정을 뒤로 하고 잠시 잠이 들었다. 

잠실역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며 지나왔는데 종합운동장역을 지나며 그는 자신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삶에 지쳐서 힘든 일이 닥쳐 그 서러움에 울 수도 있었고 어떤 일인지 몰라도 순간의 기쁨에 잠시나마 위로 같은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눈물은 그 잠시의 시간동안 잠들었던 동안 꾸웠던 꿈이 너무 현실같아서 흘린 것이었다. 

꿈에서 그는 나라 전체가 전쟁에 휩싸이고 자신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처형당하게 되었다. 꿈인데도 사람들의 비난과 사람들의 침뱃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느끼며 그렇게 끌려다녔다. 그리고 그에게 선고된 형은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이 자신을 돌팔매하여 죽이는 형벌을 받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연인또한 같이 죽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느꼈다. 그녀를 바라보며 어서 돌을 들어 나에게 돌을 던지라고 그리고 당신을 결코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서 던져 당신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용기라고... 

그리고 돌을 맞는 그 순간의 아픔보다 그녀가 던진 돌 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며 가슴 아파하지 말라고 기도할 수 있는 두번째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일년이 넘게 지난 것 같은 그 꿈은 불과 몇십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끝났고 일어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 삶에 그 눈물만큼 따뜻할 눈물이 얼마나 있을지 아쉬워하며... 

처음에 그는 그 눈물이 아픔과 상처로 인한 두려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해보지 않았다는 후회의 눈물이고 미움의 마음으로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던진 돌이 나에게도 아픔이 된다는 것을 느끼는 눈물이었다. 

짧은 시간, 긴 꿈을 통해 그는 사랑이란 이런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꿈으로나마 느낄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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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사랑, 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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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사람들 생각 2010/09/06 13:47
하늘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하늘을 보면서 마음의 맑음을 가질 수 있고
하늘을 향해 작은 소망하나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거세게 밀려오고 미려오는 신비스런
함성 속에 그리움과 사랑이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산이 아름다운 것은
꽃이 피고, 잎이 우거져 숲을 이루어
산새소리, 바람소리,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안식처가 되어주다가
홀연히 낙엽을 떨구어 자신을 모두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아름다운 것은
뜨겁고 덥지만 저마다의 충실한 열매를 위한 
생명의 쉼 없이 움직임의 아름다운 몸짓이 한창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아름다운 것은 
얼굴만 바라보아도 마음이 통하고
눈빛만 부딪쳐도 슬픔을 알아내며,
서로에게 사소한 말 한마디로 힘과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에게 위로와 사랑으로
너, 나, 우리에게 작지만 나누는 모습이며
보이지 않는 마음 안의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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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무엇이어야 할까? (나의 소명을 찾아)

원준이 생각 2010/07/22 03:29

오랜만에 대화 속에서 직장을 잡고 어느 정도 가정을 꾸린 사람들에게서도 항상 출연하는 대화의 소재는 바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혹은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다. 오늘도 대화를 하면서 각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만족하고 살고 있는지 또 나는 어떤 일을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 소명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소명이란 욕심 내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 내려고 하는 일들이라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꼭 하느님과 같은 종교적 존재를 떠나서) 그 일이 타당하고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니 그 일들을 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드는 것이 될 것이다. 종교인들은 하느님과 기도를 통하여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하지만 사실 그 대화는 일상의 지인들과의 대화처럼 음성이나 글자를 통해서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하느님에게 매달려도 ‘이것이 나의 소명이다!’ 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나의 소명이야!’ 라고 자신하고 수십 년 해왔지만 결국 아님을 발견하고 늦은 나이에 다른 것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한가 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만들어지는 영향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

라고 생각하고 싶다.

행복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것이 행복인지에 대해서는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는 그 모습에서 ‘아 저 사람은 행복하겠구나!’ 라며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정의는 각자가 느끼는 마음과 모습에 양보하게 하고 싶다.

이 순간에 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희망이 무엇일까 하면서 사람들은 깊은 한숨을 쉬기도 한다. 희망을 찾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희망이 정말 사람들이 생각하는 희망이 맞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확실성이 큰 작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일에서 행복을 찾고 즐거워하고 그 즐거움과 행복이 오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김장훈, 션 & 정혜영 부부, 차인표 신애라 부부와 같이 기부나 나눔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정말로 내 삶은 풍요롭고 고급 외제 승용차에 먹을 것 걱정보다는 맛있는 것 걱정하고, 입을 것 걱정보다는 멋있는 것 걱정하는 삶 속에서 지내고 있는데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면 힘들고 굶주리는 많은 아이들과 병들고 고통 받아도 돈 때문에 치료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습관적으로 무시하며 사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즉, 나눔은 없고 자신의 삶만을 풍족하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혹은 풍요롭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겨우 먹고 살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은 외면하며 살아가는 삶이 정말 행복한가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행복과 연관해서 얘기하고 싶다.

희망이란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어’ 그 사람이 “행복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 이라고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여기에 필요한 요소는 바로 ①‘누군가에게 = 누구’,  ②‘영향을 주어 = 나눔’,  ③‘행복한 모습으로 변화 = 보람’ 의 세가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은 그저 집안 살림만 하고 살아왔기에 어머니들은 주부로 한정되어 보였지만 사실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사랑하는 배우자나 자식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분들이시기에 자식들이 자라는 과정에서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인내로 지켜올 수 있었던 분들이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의 마음으로 항상 영향을 주면서 자신의 가족들이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는 분들이시다.
그렇기에 그분들은 자신이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복을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소명인 주부라는 행복한 마음으로 하실 수 있는 것이고 그 영향을 받은 가족들도 분명 행복해진다는 희망으로 오늘도 어머니들은 열심히 어려운 일들을 묵묵히 하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 내가 하는 이 일을 했을 때 ‘누군가 나의 일을 통해 혜택을 보고 그 사람이 행복해 하겠구나’ 생각한다면 그 일은 분명 자신의 값진 소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예이지만 ‘자신의 일이 기업 총수의 행복을 만들어 줄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은 분명 ‘아 월급 때문에 정말 억지로 한다’ 는 사람보다 분명 일을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일에는 항상 희망이 있어야 더욱 더 즐겁고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부와 나눔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바로 자신이 희망했던 일들 – 내가 도와주고 나누어 주고 싶은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희망 –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성취감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 아이들이 배고픔의 걱정 없이 살아 행복한 웃음을 만들 수 있다면…’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자신의 행동은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꿈꾸던 희망이 ‘아픈 아이들이 치료받아 건강해져 세상을 뛰어 놀며 그 아이들의 맑은 웃음을 보는 것’이라면 그 웃음을 위해 기꺼이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의사가 되거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희망의 힘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이겨낼 수 있는 인내를 요구하며 다른 이들을 위한 사랑의 마음이다. 자신의 욕심이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희망은 결국 자신을 파멸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욕심이다. 그래서 희망은 항상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향해있어야 하며 그 과정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오늘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의 행복’ 을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인내하며 해야 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소명이 아닐지라도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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