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준생각'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8/09/25 착한아이 신드롬
  2. 2007/03/16 마음은 어디로 갔나요...?
  3. 2006/09/17 익숙함과 어색함이 공존할때...
  4. 2004/08/15 내가 미술관을 찾는 이유
  5. 2004/08/01 날고 싶어하는 영혼을 위해...
  6. 2004/06/14 지인론

착한아이 신드롬

원준이 생각 2008/09/25 00:32
이제 막 20살이 되는 소녀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고 아버지는 맨날 술만 마시고 딸을 보기만 하면 구타하고 그런 삶속에서 소녀는 20년이라는 세월을 참으면서 지내왔던 것입니다. 단지 아버지란 이유로 내가 아버지를 이해해야지 누가 이해하겠어... 생각하면서 매일 매일의 구타와 심한 모욕 속에서도 소녀는 그렇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매일 이렇게 아버지를 이해했습니다. 

"그래 아버지는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라지 않으셔서 할아버지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그렇게 대하시는 것일거야. 내가 참아야지 어떻게 하겠어. 나마저 떠나버리면 불쌍한 아버지는 어떻게 혼자 사실 수 있겠어." 

그렇게 '착한 소녀'는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객사하고 나서 슬픔을 간직한 체 결혼을 하게 되었고 행복하게 아들 딸 낳고 잘 살았습니다.... 


 하고 이야기가 끝나면 뭔가 이상하죠. 

결국 그 소녀는 자신의 둘째 아이가 10살이 되던 38살에 자신의 두 아이를 모두 야구 방망이와 날카로운 흉기로 죽이고 이를 목격한 자신의 남편마저도 잔인하게 살인을 했습니다.

법정에서 정신이상을 인정받아 치료보호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당시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유는 당시 전혀 범죄기록도 없고 동네에서도 항상 누군가를 도와주기로 소문이 났었던 착하고 착한 한 부인이 갑자기 살인마로 돌변하면서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소위 "착한 아이 신드롬"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마음 속으로 바라는 것을 행동하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맞춰갈려고 하고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그러나 제가 사실 말하고 싶은 부분은 발달심리학이나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죄와 용서라는 부분을 얘기하고 싶네요. 


 그 소녀는 마음속에 아버지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착한 심성에 사람을 너무도 깊히 이해하고 그 사람의 행동에 무엇인가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조차 인정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어느 그 순간... 잘못이 있는데도 그 잘못이 상황에 파묻혀버리면 나중에는 그 상황은 잊어버리고 그 잘못이 마음속에서는 정당화되어버린다는 것이죠. 

한동안 "용서"라는 테마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어떤 것일까? 정말 미워 죽겠는데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의 살인마에게 자신의 가족이 비참하게 죽은 사람이 그 살인자를 용서하는데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인가. 그래서 그런 용서의 그 멀고 먼 길에 선 사람들을 우리는 쉽게 "바보"라고 말합니다. 용서는 무슨 용서냐 똑같이 당해야지 그러면서 자신에게 남는 것은 분노와 무엇을 하던 쉽게 가라앉지 않는 자신의 마음입니다. 

어떻게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아이러니 하게도 용서의 시작은 죄의 인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죄의 피해자들도, 위에 제시된 소녀와 같은 상황에서 소녀는 아버지의 "불우한 가정환경과 쉽게 고칠 수 없는 상황"과 "아버지의 구타와 나쁜 술버릇에 해당하는 잘못과 죄"는 분명 분리해서 인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그런 상황은 이해해야지만 그 상황에서 꼭 죄를 짓는 것까지 인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이죠. 따라서 용서의 시작은 사람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사람의 죄에 대한 철저한 분리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원치 않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너무도 완벽하지 못해 잘못을 합니다. 그것은 "착한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착한 아이가 다양한 상황속에서 잘못을 구별해내지 못한다면 상황에 묻혀 잘못도 인지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은 더욱 더 위험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진정한 용서란 무턱대고 덮어두고 그래 모든 걸 이해해... 의 무조건적인 용서라기 보다는 "너에게 있어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그것은 너의 잘못이야" 라고 얘기해줄 수 있는 것이 더 큰 용서라는 것입니다. 
어린시절 아버지가 나에게 어떤 죄를 지었다는 것에 대해서 인지했다면 그 착한 아이는 그 죄를 아버지가 다시 행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의 인지는 용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잘못혹은 죄의 인지없이는 자신마저도 그 죄의 피해자로 만들 수 있는 무서운 방아쇠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성실하고 한점 부끄럼없이 살아간다고 생각해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해야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용서의 시작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죄의 인식을 통해 다시 죄가 만들어지지 않기 위한 노력의 시작이고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몇 안되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용서의 길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덮어두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까지도 죄의 굴레 안에서 고통받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는 마음으로 시작되어야 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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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디로 갔나요...?

원준이 생각 2007/03/16 02:56

"누나 그 마음... 내가 가진 그 가슴떨리던 마음은 어디로 간걸까?"


친누나 같은 내 삶의 카운셀링을 해주던 누나에게 나도 모르게 물어보았다.


몇 개월 전...


누군가를 만났다. 내가 그녀를 좋아한건 그녀의 외모나 조건이 아니었다. 그 어떤 한가지가 좋다... 그 어떤 한가지가 싫다 말하기 전에 그냥 내 마음이 그녀를 먼저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매일 통화를 하고 그녀의 아침과 그녀의 저녁을 그녀의 목소리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행복의 하나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마음 다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한통 한통... 매일 밤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푸짐하게 사두었던 편지지 하나하나 쓰면서 그녀에게 편지를 쓰고 다음날 우체통에 내 마음 편지통해 전해지길 바라며 넣었다.


몇번째 편지였을까? 그 편지에 난 이렇게 적어보냈다.


오늘 한시간 반동안 택시를 기다리다가 결국 내가 콜을 부른 택시가 와서 더이상 기다리지 않고 집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한시간 반동안 기다려 지친 나에게 택시기사가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You are so lucky because I got your call just as I reached around you."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엔 이 기사가 한시간 반동안 기다린 날 모르는구나... 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당신이 생각났어요. 오랜동안 알지 못하다가 늦게서야 당신을 알게 만나게 되었지만 그 한 순간도 당신과의 만남이 늦었음에 불평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늦었어도 당신과의 만남은 나에겐 분명한 행운입니다.


단 15일만에 10여 통의 편지를 쓰면서 내가 기억에 남는 내용은 이것뿐이었다. 하루 하루 그녀를 생각하며 쓴 그 편지들은... 그 안의 내 마음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요?

나에게서는 이미 떠나버렸고... 당신은 이미 나를 떠나버렸기에 그 마음은 어디로 갔나요? 아직도 당신과 나 사이에서 떠돈다 해도 다시 잡고 싶지는 않은데 그저 난 그 마음이 어디로 간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떠돌 공간을 생각하니 그저 슬프기만 합니다.


떠난 당신이 원망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빈털털이 마음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그 마음은 미아처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것이잖아요.


그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요? 내 마음속엔 없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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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과 어색함이 공존할때...

일상 다반사 2006/09/17 18:40
성당을 마치고 익숙하게 Raffles City 스타벅스에 들어간다. 항상 같은 시간에 카운터를 보고 있는 여자분은 나를 알아보고는 얘기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음료와 어떤 사이즈를 원하는지를 짐작하고 먼저 물어봤다.

익숙하다는 것은 그처럼 편하기도 한 것 같다. 이제 영어로 물어보는 일상이 한국어로 물어보는 것이랑 별반 다를 것 없이 되어버려 내가 구지 영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기지 않은지도 꽤 오래 흐른 것 같다. 익숙하게 음료를 내려놓고 노트북을 꺼내어서 익숙하게 무선 인터넷을 사용한다.

스타벅스는 세계 어디를 가도 같은 분위기와 인테리어로 사람들에게 친숙함을 줄려고 한다고 한다.

참 많은 부분이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진열대, 계산대, 그리고 Pickup table 의 모양까지도 집 앞에 있던 스타벅스와 그리 달라보이는 것이 없다. 집앞에서 즐기던 무선 인터넷까지 생각한다면 그리 다를 것 없는 그런 분위기임은 사실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런 익숙함에... 이미 익숙해진 그런 방식과 그런 분위기에 사진을 한장 찍고 나서 사진기 액정에 담긴 그곳은 왜이리 낯선지 모르겠다. 그 순간 내가 이 공간에 있다는 것 조차도 어색해지고 만 것이었다. 집도 하나 하나 꾸며가고 '내집' 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청소도 하고 이미 익숙해진 그 공간속에서도 항상 어색함으로 도색되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때로는 연습으로... 반복으로... 익숙함을 얻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익숙함속에서는 어색함은 존재하지 않고 그렇게 말이다. 한국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다.

이제 현지인 다 되었네... 너무도 익숙하게 잘 아네...

사실 현지인들보다 어떤 부분 더 많이 알고 잘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에겐 처음가는 곳이라 할지라도 익숙하지만 나에겐 몇십번을 찾아도 어색함이라는 것이 묻어 나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어색함과 익숙함... 그 둘은 설명하지 않아도
원래부터 공존하고 있었던 사이였던 것이다.

익숙함에 그 것을 깨달지 못하고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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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술관을 찾는 이유

원준이 생각 2004/08/15 22:30
난 미술관을 좋아한다.

때로는 다리가 너무 아프고 피곤함에 지쳐서 그저 쉬고 싶을때도 근처에 괜찮은 전시회가 한다고 하면 달려가 보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특히 내 주위의 공대생들은 그런거 왜 돈주고 보러가야하냐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런것을 누리는 여유에 대해서 부러워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난 그들의 시선이 좋아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만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난 미술관을 이런 이유로 간다.

먼저 난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간다.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한다. 내 마음의 감성, 느낌을 풍부하게 하고 싶어서 그런 예술을 추구한다고... 난 반대의 이유이다. 내가 느낄 수 없었던 예술가의 모습속에서 내 가슴속에 찌들었던 멍들었던 그런 잔금을 그런 그림하나로도 씻어내릴 수 있을 것 같이 마음이 비워지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참 넓어서 좋다. 천정을 보아도 내가 뭔가를 그리기에 충분히 높은 공간이라서 좋다. 물론 많은 작은 미술관도 천정이 높기만 한건 아니다. 그렇지만 백색, 아이보리의 일관된 색의 연속은 마치 무한의 공간에 놓인 듯한 느낌을 받기에 좋다. 그리고 미술작품으로 비워진 내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그려야한다는 충동을 받는다.

그렇지만 그 충동은 충동에서 끝나지 그 이상은 아니다. 그래서 다시 삶속에 돌아왔을 때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느낌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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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어하는 영혼을 위해...

원준이 생각 2004/08/01 04:00
날고 싶은 사람들은 꿈꾼다. 

나에게 날개를 달 수 있게 해달라고... 

날개를 얻고 나면 날개만으로 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들이 멋지게 창공을 저어가며 날아가는 것은 보아도 

날기 위해 어린 시절 얼마나 많은 날개짓을 연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날개를 달고 날개짓을 해 하늘을 날고 나면 

어떻게 땅에 내리는지 알아야 한다. 

비록 멋지게 하늘을 가르며 비행에 성공했다 해도 

제대로 착륙을 못하면 결국 크게 다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다치는 것을 두려워해 계속 하늘에서 비행만 한다면 

언젠가 지쳐 추락하게 될 것이다. 

날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더 큰 어려움이 닥칠거란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그 어려움을 두려워해 날기 거부하지 말자. 

우리가 꿈꿔야 하는 것은 날개가 아니라 비행이다. 그리고 멋지게 착륙하자. 


그게 인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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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론

원준이 생각 2004/06/14 02:22
사람들과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서 몇가지 지인을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입장이지 어떤 곳에 인용한것 아니다.)

지인(地人) : 땅과 더불어 자라온 친한 친구 흔히들 죽마고우라고 불리우는 친구. 그 근본이 땅에 있기에 그리고 자라온 환경의 비슷함으로 서로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아도 (少譚; 적은 이야기) 많이 감정적으로 느끼지 않아도 (少感; 적은 느낌) 으로도 담(;편안할)할 수 있으며 감(;살필) 할 수 있다.

지인(知人) :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 서로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아도 (少譚; 적은 이야기) 그렇지만 많이 느끼어서 (多感;많은 느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주는 친구같은 존재...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아도 텔레파시 통한 것처럼 지내어도 담(;편안할)할 수 있으며 감(;살필) 할 수 있다.

지인(智人) : 많은 것을 배우는 친구...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해야하지만 (多譚; 많은 이야기) 많이 느낄 필요가 없어서 (少感; 적은 느낌) 서로에 대해 감정적으로 충돌은 일어나지 않고 서로 많은 이야기로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많은 것을 배워가면서 담(;편안할)할 수 있으며 감(;살필) 할 수 있다.

지인 (志人) : 뜻을 같이 하는 친구...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多譚; 많은 이야기) 서로의 필요성을 많이 느껴야 하면서 (多感;많은 느낌) 때로는 충돌도 일어나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가 뜻하는 바가 비슷하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와 많은 감정을 통해서 담(;편안할)할 수 있으며 감(;살필) 할 수 있다.

지인 (持人) : 서로의 마음을 가지려는 친구... 보통 연인이라고 불리어지는 사람들...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며 (多譚; 많은 이야기) 많이 느껴야 해야 (多感;많은 느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도 부족해서 많은 이야기와 많은 느낌으로도 쉽게 담(;편안할)하여지기 어려우며 감(;살필)하기도 쉽지 않다.

살아가면서 말과 느낌으로 나누었을 때 내가 생각하는 인간관계를 위와 같이 정리하게 되었다. 물론 한 친구가 여러 분류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그리고 어떤 친구가 내 삶에 있어서 필요하다 아니다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은 때로 너무 마지막 지인(持人)을 갈구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 많은 지인들을 두루 두루 가지고 싶다. 그것이 나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반대도 있다. 때로는 이 사람은 나에게 이런 지인이었으면 하는데 상대방은 나를 이런 지인이었으면 하게 된다면... 쉬운 길을 선택하여 한명의 친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힘든 길을 자초할려는 존재같기도 하다. That's 'hum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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