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생각'에 해당되는 글 38건

  1. 2011/12/29 사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2. 2011/12/12 흉터
  3. 2011/11/22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4. 2011/07/01 내등의 짐
  5. 2010/11/25 결혼에 대하여 - 예언자
  6. 2010/10/06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신앙
  7. 2010/10/01 겸손의 성녀 - 리지외의 성녀 소화데레사
  8. 2010/09/08 지배자
  9. 2010/09/06 아름다운 세상
  10. 2010/03/25 사랑은 고통 - 닐 기유메트 (1)

사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사람들 생각 2011/12/29 17:43
안셀름 그륀

우리는 실제로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바로 새해의 시작입니다

당신은 우리 삶이 새롭게 달라질 거라고 신뢰하십니까? 그리고 우리 생명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새로워지고, 우리 내면에는 언제나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하는 근원의 샘이 흐르고 있다고 믿습니까? 당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 샘은 결코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샘은 신으로부터 우리에게로 흘러 들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작이란 언제나 마음속 깊은 곳을 헤아리고, 내면의 원초적인 불안과 동경을 이해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천사가 일요일과 축일에만 인생의 환희를 맛보게 하는 건 아닙니다. 천사는 매일 아침 당신 눈을 뜨게 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천사는 당신 손을 잡고 인생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건강하다는 것, 즉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자유로이 숨 쉴 수 있다는 것 또한 즐거운 일입니다.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뜻밖의 기쁜 일들을 느끼는 것이 바로 환희입니다.

풍경은 말(言)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과 노래로 표현되고 찬미되지 않는다면, 풍경은 단지 존재하기만 할 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단어로 불렀을 때 풍경은 실재합니다. 그건 바로 풍경 속에 잠자고 있던 생명을 깨웠기 때문입니다.

수도사들은 인간을 위한 창조물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이 나도록 찬양합니다. 창조물은 신의 은혜에 감동한 인간의 찬양으로 완성됩니다. 하지만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은 창조물 속에 존재하는 신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자신만을 위해 세상을 개발하는 사람은 창조물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맙니다.

삶이 주는 즐거움만을 맛보려 해서는 안됩니다. 약함을 피하고 선함을 행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단념을 배워야 합니다. 단념은 내면의 자유로 가기 위한 금욕을 말합니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만이 환희를 맛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외부로부터 강요된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의 기분은 정말 우울할 것입니다.

가을빛은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화한 눈빛이 세상을온화한 빛에 잠기게 합니다. 온화한 가을빛 속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가을 빛은 메마른 나무조차도 아름답게 만듭니다. 이런 아름다움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잘 보입니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온화함이 묻어납니다.

인생은 종종 나이가 지긋한 사람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인생의 굴곡을 통과했기에, 흔들림 없이 온화한 눈빛으로 모든 것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그 어쩐 것도 전혀 낯설지 않지요. 또한 그들은 쉽게 판단하려 들지 않습니다.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온화한 가을빛을 온몸으로 발할 뿐입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을 음미하려고 하겠지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하면서, 신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 사실을 왜곡하려고 하기 때문에 삶이 새로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성 베네딕트의 수도자들은 정신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매일 죽음을 생각합니다. 슬픈 얼굴로 세상을 달려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음미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인생을 사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죽음을 연습하십시오.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알찬 인생을 가꾸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비밀이 남긴 자취를 쫓고 있습니다. 그래서 묻겠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살아가고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당신에게 삶이란 어떤 느낌입니까?

유년기의 상처에 집착하면 좋은 삶을 꾸려나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엄격하게 자신을 길러준 부모를 비난하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을 의식하며 살기 위해서는 유년기에 받은 상처와 이별을 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단지 좋거나 나쁜 경험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상처 속에는 건강한 뿌리도 존재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부모와 이별할 때 비로소 그 건강한 뿌리를 발견합니다.

안셀름 그륀 - 머물지 말고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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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고난, 상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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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사람들 생각 2011/12/12 06:52
모든 상처에는 흉터가 남는다. 
그 흉터는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훈장이 될 수도 있고, 숨기고 싶은 창피한 흔적이 될 수도 있다. 
내 딸아이는 어릴 때 심장수술을 받았다. 
딸아이는 그 흉터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어느 날 나는 우울해하는 아이를 꼭 안으며 말해 주었다. 
“그 흉터는 바로 네가 큰 병을 이겨냈다는 징표란다. 
어린 나이에 그 큰 수술을 견뎌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어. 
그래서 난 네 흉터가 오히려 자랑스럽단다.”



- 김혜남의 《어른으로 산다는 것》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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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사람들 생각 2011/11/22 00:51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 법정 스님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된다.

옷깃을 한번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분분의 피해는 진실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댓가로 받는 벌이다.
 


 


무엇을 탓할까... 

잘못된 인연으로 받은 피해도 결국 나의 몫이고 이겨내기 위해서는 결국 지나간 인연을 후회하고 정당화시키려 하지 말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잊어버리지 못하고 쉽게 인연을 희망하며
자신은 진실을 다했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 
그 인연을 지우지 못한다면
인연의 잘못된 투자에 조금씩 자신을 소모해버리고 말 것이다. 

침묵 안에서 그리고 고요함 안에서
그 인연의 잘못된 첫 단추부터 마지막 실오라기까지... 
찬찬히 내 자신을 살피며 보며 살펴보자... 省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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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등의 짐

사람들 생각 2011/07/01 00:15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습니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의 삶을 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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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하여 - 예언자

사람들 생각 2010/11/25 13:36
예언자: 결혼에 대하여 - 칼릴 지브란

... 스승님 결혼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대답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나기를 같이 했으니 있기도 영원히 같이 해야 한다.
너희는 저 죽음의 흰 날개가 너희 날들을 흩어 버린 때에도 같이 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느님의 잠잠 하신 기억 속에서까지도 너희는 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너희의 같이 함에는 떨어진 사이가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늘 바람으로 너희 사이에 춤추게 하여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얽어 매지는 말아라.
그보다도 그것으로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뛰노는 바다 같게 하라.
서로 서로의 잔을 채워 주라, 그러나 한 잔에서 같이 마시진 말라,
서로 서로 제 빵을 주라, 그러나 한 조각에서 같이 먹진 말라.
노래하고 같이 춤추고 즐기라, 그러나 서로 서로 혼자 있게 해주라.
마치 거문고의 줄들이 한 가락에 떨기는 하여도 줄은 서로 따로 따로이듯이.
너희 마음을 서로 주라, 그러나 서로 아주 내맡기지는 말라.
오직 한삶(대생명)의 손만이 너희 맘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이 서되 너무 가까이는 말라.
성전의 기둥은 서로 떨어져 서는 것이요,
참나무, 사이프러스는 서로 서로의 그늘 밑에서는 자라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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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신앙

사람들 생각 2010/10/06 05:29

  연중 제27주일   루가 17,5-10 (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신앙


묵상 : 순교자들은 죽음의 순간을 참 생명의 시작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영광으로 생각했다. 죽음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겐 불가능이 없다. 최소한의 의무만을 하면서 크게 생색을 내는 것은 참 신앙이 없다는 증거다.


   뽕나무나 산을 옮기는 믿음


오늘 예수님은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며 청하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하신다. 다른 복음에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마태 17,20)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을 실증이라도 하듯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스완쿼트라는 마을에 1874년 성당이 세워졌는데, 신자들은 원하는 자리에 성당을 세우지 못하고, 그 근방 다른 자리에 성당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땅 주인이 땅을 팔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원하는 자리에 성당을 세우지 못하여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당을 짓고 헌당식을 가진 지 2년이 지난 1876년 9월17일 엄청난 폭우와 폭풍이 그 지방에 몰아쳐 성당은 폭풍우에 90여m나 떠밀려, 신자들이 그토록 원하는 자리에 정확하게 옮겨졌다. 이렇게 하느님의 손으로 성당이 이사를 하자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땅 주인도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성당 이름도 ‘하느님의 교회'라고 바꾸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는 107년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 때, 콜로세움(원형극장)에서 사자 밥이 되어 순교하셨다. 성인은 스미르나의 주교 성 폴리카르보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청하는 것은 단 한가지 하느님께 바치는 내 피의 봉헌을 허락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밀로서 그리스도의 순수한 빵이 되기 위하여, 짐승의 이빨로 고운 가루로 갈아지기를 바랍니다"하며 순교의 열망을 피력하셨다.


  순교자들은 죽음의 순간을 새 생명의 시작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영광의 순간으로 여겼다. 수많은 신자들을 사자 우리에 처넣은 네로 황제는, 달려드는 사자들도 두려워하지 않고 성가를 부르며 태연히 죽음을 맞는 그들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고 한다. 죽음을 영광으로 여기며, 죽기를 각오한 사람들에게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이렇게 신앙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

교회사 안에서 보게 되는 수많은 기적적인 사건과 상상을 초월하는 신앙의 승리는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이런 신앙의 힘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무신앙적인 적반하장


  오늘 복음은 언뜻 보기에 신앙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종과 주인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종은 주인의 명령대로 다 실행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신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나서 “저희는 보잘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고 말하라고 하신다.


  우리 주변에는 가정을 알뜰히 돌보면서 평일미사는 물론, 레지오나 신심단체 활동을 통해 환자 방문과 전교, 본당행사 때의 노력봉사, 피정 참여 등에 열심한 신자들이 많다. 그리고 많은 후원회에 가입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신자들도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다고 신앙 안에 겸손해하는 이들을 본다. 그런가 하면 평소엔 냉담을 하고 있다가 부할이나 성탄 때 판공성사만 겨우 보고 또다시 냉담을 하면서도 “그래도 판공성사 봐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는 식으로 적반하장인 대축일 신자도 적지 않다.


  그리고, 어쩌다가 작은 봉사라도 하면 동네방네 떠벌리며 자기자랑을 하는 이들도 있다. 신앙적인 자세가 전혀 없어, 모든 것을 이해타산적으로 보는 세속적인 가치관에 찌들은 이들에겐 봉사활동은 ‘노동력 착취'요 감사헌금은 ’금품 사기'정도로 보일 것이다.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이기에, 그들의 시야는 이 현실 안에 갇혀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하느님, 당신은 내 삶에 끼여들지 마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합니다"하는 자세로 하느님을 실생활 안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항상 자신의 얄팍한 계산으로 살아갈 뿐이기에, 죽는 날까지 결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주는 신앙의 세계를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믿는 만큼 당신의 권능을 보여주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신앙도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이다"고 하셨다. 우리도 이 미사 중에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자.


어느 신부님의 강론 내용 중에서...



기적은 두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다. 첫번째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두번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을 때라고... 그런데 우리는 첫번째 믿음은 그렇다 하더라도 두번째 내려놓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가 성실하고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것과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하는 마땅한 일이고 그 마땅한 일을 하고도 '칭찬 받을 것'조차도 기대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무고 도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사는지 모른다. 


하느님은 한순간에 내 지식, 내 재산, 내 어떤 것이라도 한순간에 빼앗아 버릴 수 있는 분이시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그 많은 지식, 그 많은 명예, 그분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데 인간은 그것들을 위해 사람들을 서로 힘들게 하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이다. 


신앙도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그리고 그 선물이 소중하다면 함부러 버리거나 쉽게 사라지게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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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겸손, 믿음,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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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성녀 - 리지외의 성녀 소화데레사

사람들 생각 2010/10/01 12:31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말합니다.

" 겸손이란 ' 나는 실수투성이다'라고 생각하거나 고백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할 때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녀 데레사의 한 동료 수녀는 이런 말을 합니다.

" 나이 많은 수녀 한 분이 데레사 수녀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수련 수녀들을 지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수녀는 자신이 데레사 수녀에게 가진 적대감을 데레사 수녀가 느끼도록 거칠게 대했습니다.


어느 날 휴식 시간에 그녀는 데레사 수녀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데레사 수녀가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는 데 신경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지도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심한 말을 했습니다.


옆에서 나는 그 일을 주의 깊게 지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데레사 수녀의 표정은 상대방의 흥분한 표정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데레사 수녀가 이렇게 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 아 수녀님, 수녀님의 말이 맞습니다.

저는 수녀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완전하답니다.' "



' 리지외의 성녀, 아기 예수의 데레사께 드리는 9일 기도 ' 책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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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

사람들 생각 2010/09/08 23:47
지배자 

인간은 내적으로 자유롭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상처 입히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왜냐하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있으면, 
즉 자기 중심을 가지고 서 있으면, 
어느 누구에게서도 상처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어느 누구도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

- 안젤름 그륀의《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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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상처, 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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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사람들 생각 2010/09/06 13:47
하늘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하늘을 보면서 마음의 맑음을 가질 수 있고
하늘을 향해 작은 소망하나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거세게 밀려오고 미려오는 신비스런
함성 속에 그리움과 사랑이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산이 아름다운 것은
꽃이 피고, 잎이 우거져 숲을 이루어
산새소리, 바람소리,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안식처가 되어주다가
홀연히 낙엽을 떨구어 자신을 모두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아름다운 것은
뜨겁고 덥지만 저마다의 충실한 열매를 위한 
생명의 쉼 없이 움직임의 아름다운 몸짓이 한창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아름다운 것은 
얼굴만 바라보아도 마음이 통하고
눈빛만 부딪쳐도 슬픔을 알아내며,
서로에게 사소한 말 한마디로 힘과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에게 위로와 사랑으로
너, 나, 우리에게 작지만 나누는 모습이며
보이지 않는 마음 안의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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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고통 - 닐 기유메트

사람들 생각 2010/03/25 12:46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 하나가 바람에 실려 언덕 꼭대기끼지 날아갔다. 도토리는 거기 누워 태양이 비추어 주는 동안 기분 좋게 햇볕을 쬐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양이 그에게 말했다.

photo from http://blog.ohmynews.com/goodi/


"귀여운 도토리야. 네가 아름다운 참나무로 성장하는 걸 내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아니?"

"해님은 지금 이대로의 저를 사랑하지 않으세요?"

도토리가 샐쭉해서 물었다.

"물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고말고. 하지만 네 전부를 사랑하기도 한단다."

태양이 대답했다. 도토리는 어러둥절하여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태양은 망설였다. 도토리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진실을 말해야 했다.

"이를테면 이런 얘기야. 케케묵은(코니) 소리 같지만, 나는 현재의 네 도토리다움(에이코니티)을 사랑한단다."

태양은 비슷한 발음을 이용해서 말장난을 곁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너의 보다 깊은 자아도 사랑한단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도토리가 물었다.

"그건 네 안에 감춰져 있는 잠재력인데. 작긴 해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란다. '참나무다움'이라고나 할까."

"음, 그게…."

그는 태양의 말을 곰곰 생각하느라 입을 다물었다. 다시 말을 시작했을 때는 토라진 기가 많이 수그러들어 있었다.

"제가 참나무다움을 발전시키지 않더라도 절 사랑해 주실건가요?"

태양이 대답했다.

"아무렴 하지만 사랑할 것이 많지는 않을 거야. 그냥 도토리로 있다면 말이야. 반면 네가 참나무가 되는 데 동의해 준다면 내가 사랑할 것이 엄청나게 많을 거야. 내 말뜻 알겠니?"

도토리는 이해는 갔지만 어렴풋할 뿐이었다. 어쨌든 그 문제에 관한 한 도토리로 남아 있어서는 별반 재미있을 게 없었다. '결국 한 치밖에 안 되는 키로 뭘 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언제고 지나가는 다람쥐가 주워서 녹초를 만들거나 캄캄한 굴 속에 감춰 버릴 수도 있지. 그렇게 되면 모든 걸 잃게 돼.' 도토리의 생각이었다. 그가 말했다.

"좋아요, 해님. 기꺼이 참나무가 되도록 힘써 볼 게요. 하지만 아프지 않을까요?"

태양은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시인했다.

"아마 아플 거야. 얼마간은 특히 처음엔 더 그렇겠지, 너도 알겠지만, 그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

도토리는 겪어야 할 고통에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싹 바뀌었다.

"그렇다면 전 잘 모르겠는데요."

태양이 달랬다.

"얘, 귀여운 도토리야. 내 장담하지만, 후회하진 않을 거다. 언젠가 내게 감사할 날이 분명 있을 게야."

한참을 달래고 나서야 도토리는 마침내 두 손을 들었다.

"좋아요. 이제 어떻게 해야죠?"

태양은 필요한 것들을 죄다 가르쳐 주었다. 물론 과정 전부를 가르쳐 준 것은 아니었다. 도토리가 까무라치게 놀라버릴 터였기 때문이다. 첫번째 단계는 껍질을 깨고 뿌리를 내리는 일이었다. 도토리로서는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옛 모습을 잃고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토리는 군시렁군시렁 쉴새없이 투덜대면서도 용감하게 이 관문을 통과했다. 태양은 항상 곁에 있으면서 위안과 용기를 주었다.

두 번째 단계는 싹틔우기였다. 그 역시 어려운 일이었으나 고통은 휠씬 덜했다. 그 다음에는 그 싹을 강화하여 가녀린 묘목으로, 그러고는 관목으로 성장시키는 단계가 이어졌다. 각 단계가 끝날 때마다 옛날의 도토리는 태양에게 묻곤 했다.

"지금 이대로도 절 사랑하세요?"

그러면 태양은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아무렴, 사랑하고말고. 사실 난 점점 더 널 사랑하게 되는 걸. 네가 자꾸자꾸 더 사랑스런 모습으로 변해 거거든."

이렇게 도토리는 성장을 계속했다. 하지만 꼭 순탄하게만 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 단계에서 기다리고 있을 고통이 두려워서, 그 단계에 그대로 머물기로 마음먹은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정체에서 오는 장애를 겪어야 했다. 침울한 단조로움과 진저리나게 일률적인 것, 그리고 답답스런 평범한, 그러니 결국 따져 보면, 그래도 성장의 고통을 따르는 편이 더 나았다. 최소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는 결국 태양에게서 용기를 얻어 다음 단계로 밀고 나가곤 했던 것이다.

가지를 뻗어 나감에 따라 어린 나무의 시야은 넓어졌다. 이제 그는 언덕 아래 계곡 전부를 바라볼 수 있었다. 곧 이웃 언덕 너머까지 볼 수 있게 되리라. 무엇이 보일까? 그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특히 새들이 그의 가지에 집을 짓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마침내 보잘것 없던 도토리가 참나무로서는 완전한 성숙에 다다른 날이 왔다. 그는 주위 언덕들 너머를 바라보다가 끝간데 없는 수평선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는 기쁨에 겨워 그 자리에 못박히듯 서 있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광경에 벅찬 감동을 어쩌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때 꿈결인 양 태양의 짓궂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제 알겠니? 자라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참나무는 다만 미소로 감사를 대신할 따름이었다.


『당신을 적셔 주는 사랑의 물줄기』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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