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0/07/22 희망이란 무엇이어야 할까? (나의 소명을 찾아)
  2. 2009/07/23 바보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3. 2008/03/25 그냥 가, 뛰지 말고, 다쳐!
  4. 2008/02/15 믿음... 아픔을 이기는 약해보이는 가장 강한 도구
  5. 2007/05/18 사랑, 희망의 볼모
  6. 2007/04/02 희망 고문
  7. 2004/08/09 꿈의 시계

희망이란 무엇이어야 할까? (나의 소명을 찾아)

원준이 생각 2010/07/22 03:29

오랜만에 대화 속에서 직장을 잡고 어느 정도 가정을 꾸린 사람들에게서도 항상 출연하는 대화의 소재는 바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혹은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다. 오늘도 대화를 하면서 각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만족하고 살고 있는지 또 나는 어떤 일을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 소명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소명이란 욕심 내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 내려고 하는 일들이라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꼭 하느님과 같은 종교적 존재를 떠나서) 그 일이 타당하고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니 그 일들을 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드는 것이 될 것이다. 종교인들은 하느님과 기도를 통하여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하지만 사실 그 대화는 일상의 지인들과의 대화처럼 음성이나 글자를 통해서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하느님에게 매달려도 ‘이것이 나의 소명이다!’ 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나의 소명이야!’ 라고 자신하고 수십 년 해왔지만 결국 아님을 발견하고 늦은 나이에 다른 것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한가 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만들어지는 영향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

라고 생각하고 싶다.

행복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것이 행복인지에 대해서는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는 그 모습에서 ‘아 저 사람은 행복하겠구나!’ 라며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정의는 각자가 느끼는 마음과 모습에 양보하게 하고 싶다.

이 순간에 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희망이 무엇일까 하면서 사람들은 깊은 한숨을 쉬기도 한다. 희망을 찾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희망이 정말 사람들이 생각하는 희망이 맞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확실성이 큰 작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일에서 행복을 찾고 즐거워하고 그 즐거움과 행복이 오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김장훈, 션 & 정혜영 부부, 차인표 신애라 부부와 같이 기부나 나눔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정말로 내 삶은 풍요롭고 고급 외제 승용차에 먹을 것 걱정보다는 맛있는 것 걱정하고, 입을 것 걱정보다는 멋있는 것 걱정하는 삶 속에서 지내고 있는데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면 힘들고 굶주리는 많은 아이들과 병들고 고통 받아도 돈 때문에 치료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습관적으로 무시하며 사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즉, 나눔은 없고 자신의 삶만을 풍족하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혹은 풍요롭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겨우 먹고 살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은 외면하며 살아가는 삶이 정말 행복한가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행복과 연관해서 얘기하고 싶다.

희망이란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어’ 그 사람이 “행복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 이라고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여기에 필요한 요소는 바로 ①‘누군가에게 = 누구’,  ②‘영향을 주어 = 나눔’,  ③‘행복한 모습으로 변화 = 보람’ 의 세가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은 그저 집안 살림만 하고 살아왔기에 어머니들은 주부로 한정되어 보였지만 사실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사랑하는 배우자나 자식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분들이시기에 자식들이 자라는 과정에서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인내로 지켜올 수 있었던 분들이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의 마음으로 항상 영향을 주면서 자신의 가족들이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는 분들이시다.
그렇기에 그분들은 자신이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복을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소명인 주부라는 행복한 마음으로 하실 수 있는 것이고 그 영향을 받은 가족들도 분명 행복해진다는 희망으로 오늘도 어머니들은 열심히 어려운 일들을 묵묵히 하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 내가 하는 이 일을 했을 때 ‘누군가 나의 일을 통해 혜택을 보고 그 사람이 행복해 하겠구나’ 생각한다면 그 일은 분명 자신의 값진 소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예이지만 ‘자신의 일이 기업 총수의 행복을 만들어 줄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은 분명 ‘아 월급 때문에 정말 억지로 한다’ 는 사람보다 분명 일을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일에는 항상 희망이 있어야 더욱 더 즐겁고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부와 나눔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바로 자신이 희망했던 일들 – 내가 도와주고 나누어 주고 싶은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희망 –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성취감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 아이들이 배고픔의 걱정 없이 살아 행복한 웃음을 만들 수 있다면…’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자신의 행동은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꿈꾸던 희망이 ‘아픈 아이들이 치료받아 건강해져 세상을 뛰어 놀며 그 아이들의 맑은 웃음을 보는 것’이라면 그 웃음을 위해 기꺼이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의사가 되거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희망의 힘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이겨낼 수 있는 인내를 요구하며 다른 이들을 위한 사랑의 마음이다. 자신의 욕심이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희망은 결국 자신을 파멸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욕심이다. 그래서 희망은 항상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향해있어야 하며 그 과정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오늘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의 행복’ 을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인내하며 해야 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소명이 아닐지라도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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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원준이 생각 2009/07/23 01:58
가뭄이 심해진 어느 마을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하나밖에 없는 우물물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을 길러 오고 있었다. 

모두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길러와야지 하면서 더 큰 양동이와 더 큰 물통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갈려고 하고 물을 가지고 가려는 이웃 사람들끼리 서로 먼저 왔다, 그만 담아라 하면서 인심은 나빠지기만 하는 하루 하루... 
그 마을에는 바보라고 불리우는 한 청년이 있었다. 
다들 많이 가지고 가야 한다고 싸우는 와중에 이 청년은 자신보다 늦게 온 사람에게 먼저 가지고 가라며 순서도 양보하고 심지어는 생활에 필요한 물을 길러가는 물통은 낡아 버려 구멍이 나 있었던 것이다. 큰 구멍은 아니었지만 청년의 집으로 가는 동안 물은 조금씩 빠져 나오고 집에 올 때쯤이면 자신이 우물에서 길렀던 물의 양보다 훨씬 줄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에휴 불쌍하게 애써 물 다 흘리면서 가네... 저 아이는 항상 저럴까..." 
"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놔둬요... 뭐 자기 물 흘리는 것이지..." 

마을 사람들은 그런 청년의 모습에서 멍청함과 미련함만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이 청년은 순수하고 사람들에게 양보하기 좋아하고 미련함과 바보스러움에 사람들이 놀려대도 미소만 가득한 정말 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그런 사람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게 척박해지고 이웃 인심은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이 마을엔 웃음소리라고는 찾을 수 없었고 사람들의 모습엔 가득한 주름과 힘든 고통의 모습만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가뭄이 계속되던 어느날 이 마을에는 작은 기적이 하나 일어났다. 
그 청년이 흘리고 갔던 그 길을 따라 아름다운 들꽃이 피어나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챙길려고 흘리지 않고 물을 가지고 가던 마을 사람들이 지나던 길에는 가뭄의 목마름만 남아 있어 그 땅에는 풀조차 살아가기 쉽지 않는 갈증이 더해가고 있었지만 이 바보 청년이 지나가던, 그 멍청하게 물 흘리며 갔던 그 길엔 이름모를 아름다운 들꽃들이 피어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들꽃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희망을 꿈꾸기 시작했고 조금씩 마을 사람들의 입가엔 살며시 미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군가에게 약점으로만 보이고 멍청하게 보이는 부분이 때로는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아름다운 희망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영어를 잘해야만 성공할 것 같고, 학점이 높아야만 좋은 직장에서 인정받으면서 살아갈 것 같고 조금이라도 헛점이 보이면 숨길려고 하고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마는 이 완벽의 세상속에서 살아가면서 바보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바보같다는 것은 항상 손해를 보는 것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잘못된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희망은 오히려 누군가의 헛점같아 보이는 바보같은 부분에서 더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인 듯 합니다. 

오늘 하나라도 더 가질려고 욕심가지며 살아가지는 않았나요? 
오늘 하나라도 덜 흘릴려고 조바심내며 살아가지는 않았나요? 

때론 바보같이 흘려진 한 줄기 물이 어떤 들꽃에겐 생명과도 같으며 그 들꽃은 우리에게 때론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희망없이 자신만 가득 채운 세상에서 살기 원하십니까? 
조금은 손해보는 것 같지만 희망이 가득한 곳을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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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 뛰지 말고, 다쳐!

일상 다반사 2008/03/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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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상당히 내리는 날, 우산도 없이 국수집을 찾아 다녔다. 용산 삼각지의 골목은 그 골목이 그 골목 같아서 도대체 어디인지 모르겠고 아무리 유명한 국수집이라도 큰 길에 어디 있다는 표지도 없는데 찾아가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네번쯤 돌다가 안되겠다 싶어 한 약국에 들어가 국수집을 물어봤다.

철물점에서 더 들어가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들어간 국수집... 이야기의 내용처럼 달랑 탁자 4개에서 지금은 어느정도 탁자와 앉아 먹을 수 있는 공간으로 늘린 것 같다. 그리고 국수 가격은 2,500원으로 올랐고 벽엔 신문 기사가 액자로 걸려져 있다. 그 액자도 사실 할머니가 자랑삼아 단게 아니라 누가 선물로 준거라고 그런다.

국수는 맛있었다. 4시쯤 되는 어중간한 시간인데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들어왔고 추가 국수를 외치는 사람들과 아주 오랜 단골이라고 생각될만큼 자연스러운 양복입은 아저씨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국수를 다 먹어갈 때쯤 내가 면발 하나 하나 꺼내먹고 있을 때 앉아 계신 할머니는 "더 필요한지 봐봐" 그렇게 외치셨다.

그리고 그렇게 옛집 국수집 기행은 내리는 비와 함께 끝났다. 그러나 국수의 따뜻한 국물때문인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미소만 보인 할머니때문인지 아니면 그 국수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 떄문인지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다.

서울 용산의 삼각지 뒷골목엔
'옛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허름한 국수집이 있다.
달랑 탁자는 4개뿐인...

주인 할머니는 25년을 한결같이
연탄불로 뭉근하게 멸치국물을 우려내
그 멸치국물에 국수를 말아낸다.

10년이 넘게 국수 값은 2,000원에 묶어 놓고도
면은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더 준다.
몇 년 전에 이 집이 SBS TV에 소개된 뒤
나이 지긋한 남자가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전화를 걸어온 남자는 15년 전 사기를 당해
재산을 들어 먹고 아내까지 떠나 버렸다.
용산 역 앞을 배회하던 그는 식당들을
찾아 다니며 한 끼를 구걸했다.

음식점마다 쫓겨나기를 거듭하다보니 독이 올랐다.
휘발유를 뿌려 불 질러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할머니네 국수집에까지 가게 된 사내는
자리부터 차지하고 앉았다.

나온 국수를 허겁지겁 먹자
할머니가 그릇을 빼앗아 갔다.
그러더니 국수와 국물을 한가득 다시 내줬다.
두 그릇치를 퍼 넣은 그는 냅다 도망쳤다.
할머니가 쫓아 나오면서 뒤에 대고 소리쳤다.

"그냥 가, 뛰지 말고, 다쳐!"
그 한마디에 사내는 세상에 품은 증오를 버렸다.


단 한 사람이 베푼 작은 온정이 막다른 골목에 서 있던 한 사람을 구한 것입니다.

우리네 마음이 이처럼 따뜻함으로 가득하다면 얼마나 행복한 세상이 될까요?

저는 다행히도
먹을 것 걱정보다는 맛있는 것 걱정을 하고 있으며
입을 것 걱정보다는 멋있는 것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노숙자들이 성실하지 못해서 노력하지 않아 노숙자의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도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들도 맛있고 멋지게 살고 싶은 분명한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더 맛있는 것, 멋있는 것을 찾기 보다 그들에게 작은 나눔으로 희망을 준다면 우리는 가슴에 작은 행복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할머니의 온정이 없었다면... 그 국수는 그저 돈벌이의 수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국수하나로 희망을 주었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주저앉을 수 있었던 한 사람을 일어나게 했다면 그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것이 그 국수집에서 나올 때 가질 수 있었던 희망의 메아리었습니다.

우리는 다행히 그 자리에 있지 않지만 어쩌면 불행히도 그 자리에 우리가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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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아픔을 이기는 약해보이는 가장 강한 도구

원준이 생각 2008/02/15 19:46

영문도 모르고 수술실에 들어간 아이는 수술에 대한 공포보다는 내일 학교를 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이 수술만 끝나면 곧 학교를 갈 수 있겠지."


어떤 수술인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치료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수술하는 선생님과 부모들만이 알고 있을 뿐 그 아이는 그 수술실에서 자신에게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모르고 있다. 

오히려 수술을 즐기고 있었다. 흉부외과 선생님이 

"너 심장 보고 싶니?" 

라는 터무니 없는 질문에 아이는 "네!" 하면서 우렁차게 대답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통과 두려움이란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 습관적으로 느껴질 때만이 고통과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10시간이 넘는 수술과 그 이후 혈관을 타고 흐르는 약물의 느낌까지 느껴질 고통을 경험하기 전까지 수술과 치료는 그저 남의 이야기로밖에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지식이 늘어가면 늘어갈 수록 그 지식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래서 어떤 의사들은 자신에게 닥쳐온 현실을 고통과 두려움으로 알기 전에 공포와 불안감으로 먼저 머리로 알게 되어 희망을 얻기 전까지도 좌절을 겪곤 한다. 

수술실에 들어간 그 아이에겐 수술실은 그저 '학교를 갈 수 있는 그저 하나의 희망'이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무지의 아이는 그래서 그 무시무시한 장소에서도 희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남들은 눈물과 좌절로 겪어야 할지 모르는 그 시절을 그저 '희망' 하나로 견디어 낼 수 있었다. 비록 혈관을 타고 올라가는 항암제의 아픔과 다음번에 오면 똑같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그래도 희망은 그곳에 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위한 그 십자가의 길에서 세번 넘어지셨다. 세번... 그리고 남들은 희망없고 다 끝이라고 생각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희망의 구원을 선물해주셨다. 누가 그렇게 믿었을까? 처참하게 돌아가시는 그 예수님에게... 그저 슬퍼했을 뿐이지 그 분에게는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믿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희망이 없다고 낙담한 제자들에게 가장 큰 희망으로 변화할 수 있게 해주셨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고통과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일시적이다. 그것은 희망이 있다면 곧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십자가일 것이다. 믿음은 이런 희망없는(hopeless) 곳에 희망(hope)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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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의탁합니다. 모든걸 의탁합니다. 
포기하기에 의탁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당신께 의탁합니다. 

그 끝이 절망스러워 보이는 죽음이라도 그 것은 당신의 뜻임을 믿겠습니다. 
희망은 희망없어 보이는 그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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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희망의 볼모

원준이 생각 2007/05/18 22:45
암환자에게 만병통치약이다 특효약이다면서 파는 사람은 거의 다 사기에 가깝다고 봐야한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사람들은 그런것에 속아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암병동에 가보면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암을 치료하는가에 대한 병원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을 먹으면 좋다 무엇을 먹으면 나쁘다란 얘기들이다. 특히 환자본인보다는 가족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이 항상 들리는 소리들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말기 암 환자라면 두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첫번째는...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는 것이고 그건 결국 인내의 아픔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며 다른 반응은... 끝까지 그 사람의 곁에서 지켜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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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자의 경우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것이든 하고 싶을 것이고 그만큼 삶에서 가치있는 사람을 알고 있고 곁에 있음을 세삼스럽게 감사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의 등을 처먹고 사람의 작은 희망의 불씨를 심지마저 뺏어버릴려는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 누군가 그런 얘기를 했다. 자기의 가족이 아퍼서 그 돈을 마련할려고 그런 사기를 쳤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내 생각으로는 그런 아픔을 안다면 그런 아픔을 가진 사람을 '감히' 아프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아픔을 가진 사람은 그래서 쉽게 무디어지기 보다는 항상 누군가의 아픔을 마음으로 받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희망의 볼모로 곁에 두고 싶지 않으면서 희망을 조금씩만 준다면 그건... 어쩌면 희망을 볼모로 사랑의 아픔을 주는 것이다. 그 아픔은 아픈지도 모르지만 마치 작은 암조직처럼 언제 커져 터질지 모른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희망은 희망스럽게만 간직하자.... 볼모로 잡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tags : 볼모, 사랑,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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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고문

사람들 생각 2007/04/02 01:25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같이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절망을 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둘 사이에 애인으로서는
전혀 희망이 없음을 분명히 인식시켜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작은 희망 하나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계속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에겐 본능적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자신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그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길 바란다.

술에 취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어"라고 전화를 한다든지
사귈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과
그냥 괜찮다는 이유만으로 데이트를 한다든지,
싫어서 헤어지면서 이유는 집안이 어려워서,
옛 애인을 못 잊어서,
혹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말을 한다든지 하는 행동들은 모두 상대방에게
"희망"을 주는 행위들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그 사람 가슴에 안타까움과 속상함,
집착등을 남겨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런 행위를 나는 "희망고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웬만하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고문을 하지 말자.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면
그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희망을 주지 않음으로써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니까

 

...

『 러브에세이 中, 박진영의 "희망고문" 』


tags : 포기,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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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시계

원준이 생각 2004/08/09 03:05
난 희망을 쫓는 것이 꿈을 쫓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꿈과 희망은 크게 잡기 때문이다.

자신이 현재 이루지 못한 것을 그리고 이룰 듯 느껴지는 그 어떤 것에 희망을 가지고 꿈을 가진다. 그렇지만 사실 대부분 자신이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다소 힘든 것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 이룰 수 없는 꿈이란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별을 따고 싶은 꿈은 어른이 되어 천문학자가 되어 항상 가슴속에 별을 따면서 살아가는 과학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이고... 외계인을 만나고 싶은 어린 아이의 허황되어 보이는 꿈이 때로는 보이지 않는 미지의 탐험을 이룰 수 있는 화성 탐사선도 만들 수 있었으며 그 꿈은 아직도 이뤄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꿈과 희망을 쫓는데 그 길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 길이 평탄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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