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1/11/22 세상에 상처와 이별이 있는 이유는...
  2. 2011/10/07 몇번이라고 약속해주면 좀 더 편할 것 같다... (1)
  3. 2009/07/21 기도는 이내...
  4. 2009/02/17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 정호승
  5. 2009/01/04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기
  6. 2008/05/27 기도하듯...
  7. 2008/04/21 강해진다는 것은... (1)
  8. 2008/03/27 야, 이 자식아, 잘하는 네가 해라. 이놈아
  9. 2008/03/13 간증
  10. 2007/09/01 당신을 위해 떠나는 여행

세상에 상처와 이별이 있는 이유는...

원준이 생각 2011/11/22 21:54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처받지 않는다. - http://v.meson.kr/mbn2GX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말로 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 안에서 자신의 사랑을 위해 부족함을 표현할 것이다. 

◈ 첫번째 에피소드 

상처가 많은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도 힘들게 보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자신이 해야하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하는 것들이 더 많았던 사람이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항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 늘 사람들로 부터 사교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을만큼 쾌활하고 유쾌한 모습을 유지한다. 그래서 그 사람 주변엔 항상 사람이 많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첫인상도 그늘 진 모습보다는 유쾌함에 묻어 나오는 선입견인지 사람들에게 호감을 더 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밝은 모습과는 달리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 부터 상처도 많았다. 그 사람에게 그 상처는 항상 이겨야 하는 대상이었다. 어떤 기회를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솔찍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고백을 통해서 자신 만이 가지고 있는 짐이 덜어지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받아왔던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을 마치 두통에 필요한 진통제를 먹듯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위로를 받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갔다. 

그러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이 자신보다 더 큰 상처나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뭔가 풀리지 않는 욕구를 느끼게 되었다. 마치 진통제를 먹어 지울 수 있을 것 같은 두통에 소화제를 먹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받지 못하면 그 관계의 본질이 이루어지지 않는 느낌으로 자신의 주변엔 자신보다 상처가 덜하다고 생각하거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들을 모으게 된다. 


◈ 두번째 에피소드 

사람간의 이별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별이라도 거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날 아버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사별에 있어 그 이유가 사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사고의 현장에 아버지가 그 시간 그 곳에 있을 이유까지 찾을 수는 없다. 이미 끝나버린 이별에 매달리며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해하기 힘든 이유를 찾으려고 말이다. 연인과의 이별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차이든(dumped), 차든(dumping) 항상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별의 이유라고 찾은 것들을 보면 대부분 상대방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해서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를 하면서 과거의 상대방을 평가하며 상대방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자신은 항상 옳은 판단과 행동을 하면서 살았지만 상대방이 모든 원인 제공을 했고 나는 참을만큼 참아보았고 그러다 어쩔 수 없이 라며 그 이별의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이별이 비참해지고 누군가 물어보는 '왜 이별했어?' 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것 같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나는 이별을 통해서 성숙하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며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위로와 감정의 동감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진실했고 그 진실의 반대편에 상대방은 항상 진실하지 못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때는 다 이해했던 구체적인 행동들을 꺼내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답지 못하다. 상식이하라며 자신의 심미적 감정의 기준을 대어 하나하나 판단하며 그 큰 맥락이 결국 상대방은 나쁜 사람이라 이별이 생긴거라 이야기 한다.




 
... 상처를 받음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변명일 수 없다. 


스스로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본질적인 상처를 꺼내는 것은 더욱 더 어렵다. 대부분 상처를 받게 되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과거를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뿐이다. 그 누구도 나의 상처를 다른 이에게 완전히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이다. 부모의 학대를 받은 여러 명의 아이들이 모여도 그 상처는 사람 수만큼 다르다. 아마도 같은 부모의 학대를 받은 형제남매라 할지라도 다를 것이다. 그만큼 사람은 상처에 대한 각기 다른 수용과 감정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A 라는 아이는 그 상황을 탓하며 자신의 방이 없어 공부할 수 없음을 상처라 이야기할 수 있는 반면 B 라는 아이는 자신의 방이 없기 때문에 가족들과 살겹게 보낼 수 있다는 행복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상처란 절대적으로 이것이 상처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처는 자신이 스스로의 마음의 빗장을 열기 전에는 상처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넌 왜이리 못생겼어'라는 말 자체가 상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받아 들여 '내가 못생겼다' 라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상처로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

첫번째 에피소드로 잠시 넘어와서 자신의 상처를 나누는 사람에게는 크게 두가지의 유형이 보인다. 첫번째는 그 상처를 통해 상처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남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그 반대편엔 자신의 상처를 좀더 들어달라는 더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아무리 힘든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이것이 상처다 저것이 상처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을 얻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후자는 자신의 상처와 항상 비교하며 남의 상처를 판단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상대방이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해도 자신의 이야기로 귀결되며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상처에 대한 비교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통해서 남에게 상처주면서도 '나도 이정도 상처 안에서 살았는데...' 라며 남에게 쉽게 상처주곤 한다. 

이야기의 패턴은 항상 비슷하다. ① 나는 이런 상처를 받았다. ② 나름 많은 고민과 노력으로 성장하였다. ③ 다른 이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비교 분석한다. 상처는 치유하고 내적 성장을 위해 존재할지 모른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이해하라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자신의 상처를 남의 상처를 비교하고 판단하는데 사용한다면 그 상처는 하나의 독이 될 것이다. 상처는 치유되어야지 판단의 근거가 되서는 안될 것이다. 


... 자신의 진실함을 핑계로 상대방의 순수성에 대해서 판단할 수 없다. 


배려란 참는 것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 만나서 싸우지 않았다는 것은 두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둘 모두 자신의 이야기하지 못하고 참아오거나 두번째는 정말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경우. 둘 모두 그리 정상적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 만난다는 것은 그래도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상대방을 통해서 나와 서로의 관계를 찾아가는 하나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별의 시작은 그러한 서로에 대한 기대와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그런 접점을 찾기 힘든 경우일 것이다. 사실 이별의 시작은 다양할 수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든, 성격적인 이유든, 그 이유는 그냥 이별을 시작하기 위한 하나의 핑계일 뿐이지 대부분 자신이 기대치에 대한 실망감이 가장 클 것이다. 그 구체적인 항목이 무엇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 이별또한 아픔이고 상처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헤어지고 서로가 남이 된 상황에서 가장 재밌는 것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상당히 객관적인 자신을 설정하고 이별의 이야기를 자신의 주변에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나는 이별의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항상 진실해왔으며 상대방에 대한 상황과 행동을 자신의 지인에게 이야기하면서 수많은 동의를 구한다. 나는 진실했고 여러가지 상황을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사람 그때 그런 행동들은 정말 인간 이하의 행동이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며 자신이 이별의 당연함에 동의를 구하게 된다.

대부분 자신의 행동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판단과 기준에 맞춰 상대방을 잘못된 사람으로 만들고 그 대부분의 결론은 상대방은 원래 진실하지 못했고 상대방은 순수하지 못하다를 결론낸다. 그렇게 나쁜 경험을 했다고 하면서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동정과 연민을 얻어내면 자신의 마음이 수월해질 거라고 믿는다. 그런 소모적인 판단으로 자신의 만남에서 자신은 진실하고 상대방의 순수성은 더럽히는 것이 자신이 이별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노력한 내용들에 대해서 부연설명하며 자신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상대방의 순수성을 판단하면서 자신이 순수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만에 가깝다. 이별의 순간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성찰만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착하고 진실하게 되기 위해 지나간 인연에 대해 순수하지 못함을 가쉽하는 그 행동은 진실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성찰은 토론이 아니다. 누군가의 동의가 이별에서 자신이 옳았다고 판단하고 외치면, 그 어떤 만남에서 누군가를 배려할 수 있을까. 이별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잘못된 만남의 해소일 뿐이다. 



자신의 상처가, 자신의 이별이 누군가를 판단하는 근거로 작용한다면 몇번의 상처와 이별을 통해서도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 판단은 항상 자신을 기준으로 남을 바라보는 기준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서 결국 몇번이고 실패라는 냉소만 쌓이고 고요함 안에서의 자신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동정과 동의만을 통해 잠시 아픔을 잊게 하는 진통제만을 먹는 효과일 뿐이다. 

자신의 상처로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주며 다른이의 상처를 판단하는 사람들과
이별의 순간을 다른 누군가에게 얘기하며 다른이의 영혼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묘하게 재미있는 교차점을 가진다. 그것은 침묵 안에서 들릴 수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듣기보다는 다른 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듯 하지만 결국 다른 이를 판단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무엇을 원하고 갈망하는 것은 많아도 다른 이를 위한 배려는 배우지 못한다.

내 안에 있는 이런  모습들을 지우기 위해 성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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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이라고 약속해주면 좀 더 편할 것 같다...

원준이 생각 2011/10/07 16:54
고등학교 1학년때 임파선 종양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끝냈을 때는 그 때가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병원 치료는 받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그때의 아픔이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만 바라보았던 이기적인 나에서 세상에 아픈 아이들이 있고 세상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아픔이 있을거라는 것에 대한 인지, 그리고 종교에 대한 시작점을 만들어 주어서 삶을 돌이켜 볼 때 필요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순조롭게 잘 지내고 대학도 다니고 대학원도 다니고 공부에 대한 욕심인지 무엇인지 모르지만 싱가포르에서의 삶은 흥미진진하고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고 생각할 무렵, 뜻하지 않게 집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쓰러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택시타고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에 들어가서 검사를 받았을 때 내가 제대로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단어를 들어야 했다.

Brain tumor, you got...

똑똑히 너무도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었던 그 단어 안에서도 난 믿을 수가 없었고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항암제를 투여받으며 가장 부러웠던 친구들은 모자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었다. 오늘은 어떤 모자를 쓸까, 항암제로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아이는 모자를 쓰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보였다. 나는 모자가 싫었다.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머리카락 몇가닥을 항상 안타가워 하고 슬프하면서도 그것을 가리기 위한 모자는 나에겐 마치 죄수의 수인 번호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정말 볼품없고 민둥머리에 가까운 그 머리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두번째 싫어했던 것은 죽이다. 아픈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는 그 인식에 그 이후에도 속이 안좋아도 죽을 먹기 싫어했고 차라리 아픈 배를 이끌고 고기를 먹으면 먹었지 죽은 죽어도 먹기 싫어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모자쓰는것, 죽먹는 것은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아마도 내가 아프지 않아도 아픈 사람이라고 표시되어지는 그런 물건들로 연상되어 그냥 알아서 싫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아픈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싫었다. 항암치료가 채 끝나지 않은 고등학교 1학년 다시 복학해서도 한달에 한번 반 학급 친구들 아무도 모르는 조퇴를 하고 항상 병원에 치료 다니면서도 그리고 치료받기 때문에 공부 못해도 될거라는 핑계는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아 항암제를 몸에 가두고 전교3등을 했던 기억도 난다. 공부를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프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아픈 사람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 가장 싫었다.

싱가포르에서 달고 온 뇌종양도 심지어 1년여동안 부모님 모르게 혼자서 치료받았다. 다행히 병원일을 할 수 있어서 치료비의 부담은 적을 수 있었지만 한번 치료 받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손발이 떨리는 순간에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맡겨졌던 발표를 수행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쉽게 누군가에게 얘기하지도 못하고 얘기하더라도 정말 남 얘기하듯 얘기하는 그 와중에도 그렇게 내가 아픈 사람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못하고 난 아무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그래서 그런지 누구에게도 쉽게 얘기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생각되어지는 신에게 원망으로 시작하며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왜 나에게만 이렇게 하시는 건가요..., 무엇을 그리 내가 잘못했나요..." 누구도 들어주지 아니 하기 싫어 숨기고 싶었던 그 이야기는 결국 너무도 할 수 있는게 없는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은 오히려 내가 이겨낼 수 있는 고통에 대한, 인내에 대한 테마를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일이 다시 일어났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종양의 영향인지 아님 다른 영향인지 몰라도 이제 다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첫 치료... 생각보다 힘들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마음이 차갑고 힘이 빠지는 치료의 과정을 보내고 조금 힘내 일어서보지만 왜 또 이런 시련 안에서 내가 살아야 하는지 원망이 조금 더 큰 하루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누구에게도 얘기하고 싶지 않던 그 이야기를 이젠 그냥 내려놓는 심정으로 그냥 적어봅니다. 누군가 나를 병자로 바라보는 그 끔찍한 기분을 싫어하면서도 왜 이렇게 적어 내려가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는 그렇게 기도하고 나 스스로에게는 너무도 소흘했던 기도 때문인지 저를 알고 있는 분들이 저 대신 저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랫만에 노트북도 꺼내어 평소와 같이 하던 일들, 공부들을 하고 싶었는데 막상 아... 다르구나 하는 마음만이 가득합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지만 그냥 기도의 큰 힘을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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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이내...

원준이 생각 2009/07/21 01:27

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주님, 당신이 가르쳐준 것은 참 단순하면서도 너무 복잡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우리 예수님을 통해 오늘도 저는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 행복은 사랑의 꽃대로 만들어진 꽃이기에 그 향기는 그윽하고 오래갑니다. 그리고 그 향기는 일부러 막으려 해도 퍼져 나갑니다. 비록 욕심과 교만으로 가득차 그 향기가 느껴지지 않아도 그 향기는 퍼져 나가야 합니다. 고난에 가득찬 아름다운 영혼에겐 그 향기는 분명 느껴질 참된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하는 마음은 사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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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기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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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 정호승

사람들 생각 2009/02/17 02:13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정호승
 
서울에 푸짐하게 첫눈내리는 날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추기경 몰래 명동성당을 빠져나와
서울역 시계탑 아래에 눈사람 하나 세워놓고
노숙자들과 한바탕 눈싸움을 하다가 
무료급식소에 들러 밥과 국을 퍼주다가
늙은 환경미화원과 같이 눈길을 쓸다가
부지런히 종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껌파는 할머니의 껌통을 들고 서 있다가
전동차가 들어오는 순간 선로로 뛰어내린
한 젊은 여자를 껴안아 주고 있다가
인사동 길바닥에 앉아 있는 아기부처님 곁에 앉아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
엄마의 시신을 몇개월이나 안방에 둔
중학생 소년의 두려운 눈물을 닦아주고
경기도 어느 모텔의 좌변기에 버려진
한 갓난아기를 건져내고 엉엉 울다가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부지런히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와
소주를 들이켜고
눈 위에 라면박스를 깔고 웅크린
노숙자들의 잠을 일일이 쓰담듬은 뒤
서울역 청동빛 돔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다
비둘기처럼.


주님, 평화의 안식을 주소서... 이땅에 사랑을 남기고 가셨듯이 하늘 나라에서 평화의 안식속에서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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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기

원준이 생각 2009/01/04 23:43

새로운 한 해가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비슷하죠. 작년을 돌아보고 내년을 예상해보고 내년에 대한 걱정과 근심보다는 (아무리 상황이 안 좋다고 하더라도...)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 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전 그래서 좋습니다.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이... 왜냐하면 어느 상황에서라도 희망은 늘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니깐요.

새해 인사를 하면 전 물어봅니다. 올해 소망은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그 중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회사 취직하는 것이요!", "일본 여행가는 것이요!" 그렇게 얘기해줍니다.
한해 동안인데 너무 간단 명료하지 않냐고 하고 그렇게 한번에 이루어지거나 여건만 되면 쉽게 될 수 있는 일 말고 한해 동안 정말 바뀌고 싶은 습관이나 변화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대답을 듣습니다.

"사람들과 더 친하게 지내고 싶다.."
"가족들과 사이 좋게 지내고 싶다.."
"연애 세포를 살리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
"돈 많이 벌고 싶다.."
...
기타 등등 그렇게 얘기를 들으면 저는 이렇게 제 노트에 적어놓습니다. 

"사람들과 더 친하게 지내고 싶다.."  → 좀 더 넓은 이해심을 가지는 누가 되게 해주시길...
"가족들과 사이 좋게 지내고 싶다.." → 먼저 다가갈 수 있는, 가족들에게 먼저 이야기 할 수 있게 해주시길...
"연애 세포를 살리고 싶다.." → 진정한 참 동지를 위하여 미래의 배우자를 그릴 수 있길...
"결혼하고 싶다." → 가정의 소중함과 가정을 만들 준비된 사람으로 발전하길...
"돈 많이 벌고 싶다.."  → 돈의 소중함만큼 나눔의 기쁨도 충만한 사람이 되길...


대부분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참 현실적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좀 더 주관적인 변화의 의지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먼저 이야기 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렇게 얘기합니다. 상황이 좋아지길... 지금보다 더 좋은 관계를 위해 그들이 나에게 잘해주었으면... 수동적인 소망을 이야기하지만 제 믿음의 한구석에는 항상 변화하는 것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나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은 머리로 느껴지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기 마련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루를 시작하며 메모지에 적어놓고 오늘 느껴지는 하루 하루를 만들어갈 행동 강령을 만들어봅니다. "화낼 일에 한번 더 참고 말하기", "누군가에게 좋은 일 하기" 때로는 구체적입니다. "어제 싸웠던 동료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자"

그래서 신년 인사로 받은 주변 사람들의 소망을 그대로 받아 적고 그대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어려움과 장애를 쉽게 치워달라고 얘기하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되기 쉽지 않음을 잘 아니깐요. 저는 시험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시험을 통해 인내를 배우게 하고 지금의 힘든 상황이 더 큰 쓰임을 위해 필요한 관문임을 깨달아서 잠시 힘듦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하고 시험 때문에 자신을 자책하고 상처를 받지 않고, 자신과 같은 시험에 있는 사람들이 경쟁자이며 이겨야 하는 상대가 아닌 같은 길을 걷는 동료로 느끼게 해주시길... 그리고 자신이 노력한 것 조금 더 보상받게 해주세요."

저에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 그들이 잘되기를 진정 바라는 마음" 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새해 인사와 함께 그들이 원하는 소망을 적어보세요. 작은 시작이지만 정말 그 사람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저의 즐거운 임상결과가 이야기 해줍니다.

tags : 기도, 사랑,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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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듯...

원준이 생각 2008/05/27 03:43

아버지에게 말할 때

기도하듯 말하세요.

부족한 한 인간이기에 당신의 아버지도 당신에겐 부족해 보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듯 말하세요.

당신의 현재는 온전히 아버지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순간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말할 때

기도하듯 말하세요.

힘없는 한 인간이기에 당신의 어머니도 당신에게 연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간절했던 마음으로 기도하듯 말하세요.

당신의 미래는 온전히 어머니의 바램으로 만들어질 유일한 순간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배우자에게 말할 때

기도하듯 말하세요.

당신을 사랑하는 너무도 낮은 사람이기에 오늘도 당신 앞에서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당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당신의 하루 하루는 온전히 배우자와 나누어야 합니다. 좋은 것만이 아니라 당신의 모든 것을...

 

당신의 아이들에게 말할 때

기도하듯 말하세요.

당신의 사랑없이 한없이 슬픈 영혼이기에 오늘도 당신을 향하여 의지하며 한걸음씩 걸어가며 용기내어 삽니다.

아이의 순간 순간은 당신의 이해심으로 감싸야 합니다. 아이들도 하느님이 만드신 작은 모상이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말할 때

기도하듯 말하세요.

당신이 소중하듯 당신의 주위 사람도 소중합니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감사함과 간절함과 사랑과 희생으로 기도합니다.

힘들고 고통받고 있기에 나의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쉽게 말을 하고 누군가에게 상처준다면

지금부터 기도하듯 말해보세요.

당신이 기도할때 소중하고 아름다운...

남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그 소망처럼 먼저 말한다면

우리는 받을 상처보다 받을 용기가 더 많을 것이고

우리는 받을 고통보다 받을 사랑이 더 많을 겁니다.

 

기도하듯 오늘도 말해보세요.

그럼 당신도 누군가의 기도하는 듯...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게 되겠죠.

그리고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허락해준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고 또 이야기해 보아요.

그렇게... 우리의 삶은 기도하듯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tags : 기도, 사랑,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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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진다는 것은...

원준이 생각 2008/04/21 17:10

"예수님이 언제 나와 함께 계신다고 느꼈습니까?"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떠오르는 질문이 생겨납니다.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실까? 의 의심의 질문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 당신은 분명 나와 함께 계십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어 떠오르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나와 함께 계신다고 느꼈습니까?"
 

아주 오래 전이었습니다.

갑자기 다가온 힘든 일에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그때는 내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되어 그렇게 눈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내 곁에서 더 아파하는 부모님과 그보다 더 아파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걱정되어서 내가 두려워서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당신이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이런 시련과 아픔을 왜 주냐고..." 그날따라 묵주기도를 더 많이 했던 나이기에... "오늘 평소보다 더 많은 기도를 한 나에게 왜 이런 아픔을 줘야하나요." 

그때 나에겐 기도란 그저 나를 막아주고 나에게 시련을 오지 못하게 하는 부적과 별로 다른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요즘이 다가왔습니다.

갑자기 다가온 힘든 일에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나 때문이 아니라, 나의 부모님과 아파할 예수님의 마음에 눈물이 날 뿐입니다.

가슴은 아프고 눈물은 흘러 나오지만 대신 더 아파할 수 없음에 그저 보이지 않게 흘려봅니다.

그래서 눈물은 흘러내렸습니다. 그동안 아파했을 부모님의 마음때문에 이렇게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전 정말 괜찮으니 더 아플 부모님을 예수님 당신의 성심으로 어루만저 주세요..." 평소보다 더 많이 묵주알을 굴리고... "주님, 이렇게 아픔을 앞두었기에 미리 기도를 하게 만드셨군요."

지금 나에겐 기도란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을 손끝에서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도구입니다.


강해지는 것이란 부자가 되어 자신을 과시하는 것도 명예를 얻어 누군가 위에 오르는 것도 욕심을 채워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픔이 다가올때 그 아픔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통해 일어나는 용기를 알아가는 과정같습니다.


오늘도 눈물은 흐르지만 그래도 이젠 예수님 당신 성심의 마음에 한없이 기대어 봅니다.

tags : 극복, 기도,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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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자식아, 잘하는 네가 해라. 이놈아

사람들 생각 2008/03/27 21:07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자기에게 맞는 은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남을 변화시기키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변화하라는 말을 생각하며 그냥 유머 읽듯이 한번 읽어보세요. 재밌답니다.


나와 아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오른손잡인데 아내는 왼손잡이다. 

그래서 습관을 따라 국그릇을 왼쪽에다 잘 갖다 놓는다. 

별거 아닐 것 같은 그 차이가 신경을 건드린다. 

거기다 나는 종달새형이다. 새벽시간에 일어나 설친다. 

늦잠을 자면 무조건 게으르다고 여긴다. 

그런데 내 아내는 올빼미형이다. 

밤새 부엉부엉 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도대체 맞는 구석이 없다. 


나는 물 한 컵을 마셔도 마신 컵은 즉시 씻어 둔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언제 해도 할 일이며 

제가 다시 손을 댈지 모를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그게 안 된다. 

찬장에서 꺼내 쓸 그릇이 없을 때까지 꺼내 쓰다가 

한꺼번에 씻고 몸살이 난다.


나는 미리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떠나야 할 시간에 화장한다고 정신이 없다. 

다가가서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화장품 뚜껑이라는 뚜껑은 다 열어 놓고 있다. 

나는 그게 안 참아진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낸다. 

“아니, 이렇게 두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향 다 날아가고.

뭐 땜에 비싼 돈주고 화장품을 사. 차라리 맹물을 찍어 바르지. 

확 부어버려. 맹물 부어줄까 그래.” 

거기다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거의 없다.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성경책까지 들이밀었다. 

“여보, 예수님이 부활만 하시면 됐지, 뭐 때문에 그 바쁜 와중에 

세마포와 수건을 개켜 놓고 나오셨겠어? 

당신같이 정리정돈 못하는 사람에게 정리정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싶으셨던 거야. 그게 부활의 첫 메시지야. 

당신 부활 믿어. 부활 믿냐고?” 

그렇게 아내를 다그치고 몰아세울 때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야, 이 자식아, 잘하는 네가 해라. 이놈아, 

안 되니까 붙여 놓은 것 아니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생각의 전환, 그렇게 나 자신을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게 있다. 나의 은사는 무얼까? 

하지만 뜻밖에도 너무 간단하게 은사(gift)를 알 수 있다. 

내 속에서 생겨나는 불평과 불만 바로 그것이 자신의 은사인 것이다. 

일테면 내 아내는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고 

종이 나부랭이가 나뒹구는데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편한게 없다. 오히려 밟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나는 금방 불편해 진다. 화가 치민다. 


이 말은 내가 아내보다 정리정돈에 탁월한 은사가 있다는 증거다. 

하느님은 이 은사를 주신 목적이 상대방의 마음을 박박 긁어 놓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무기로 사용하라는데 있지 않다. 

은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선물이다. 

바로 그 때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아내한테는 뚜껑 여는 은사가 있고 

나에게는 뚜껑 닫는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아내를 대하는 제 태도가 바뀌었다. 

아내가 화장한다고 앉아 있으면 내가 다가가 물었다. 

"여보, 이거 다 썼어? 그러면 뚜껑 닫아도 되지. 이거는? 

그래, 그럼 이것도 닫는다." 이제는 내가 뚜껑을 다 닫아 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렇게 야단을 칠 때는 전혀 꿈쩍도 않던 아내가 

서서히 변해 가는 것이다. 

잘 닫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세게 잠갔던지 

이제는 날 더러 뚜껑 좀 열어달라고 한다.


아내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 

그렇게 철들어진 내가 좋아하는 기도가 있다. 


“제가 젊었을 때는 하느님에게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중년이 되었을 때 인생이 얼마나 덧없이 

흘러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평안히 살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늙어 여생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저는 저의 우둔함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기도는 저를 변화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처음부터 이런 기도를 드렸더라면 

제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송길원 교수님이 쓰신 <아름다운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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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원준이 생각 2008/03/13 05:03

 대치동 학원가의 모 교회에는 큰 현수막이 걸려있다. 현수막 안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의 사진과 옆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간증] 하나님과 같이 하여 영어를 마스터 한 중학생 김 XX 군"

 역시 대치동이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사람들에게 공부잘하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하는 교회의 따뜻한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 것을 보면서 간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하느님(하나님)과 같이 있기에 안되는 일이 잘 되어서 그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감사함을 돌린다는 의미에도 있겠지만 그를 통해서 하느님이 우리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 바로 간증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려보고 싶다.

 간증이라고 하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려움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내고 또한 사람들에게 널리 잘 알려진 사람으로 사람들의 부러움이나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화상으로 얼굴을 포함하여 온 몸에 화상을 입고도 꿋꿋하게 잘 이겨내는 이지선 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 뭉쿨하며 그 안에서 따뜻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바로 그런 것이 간증이라는 생각은 해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만을 얘기하는 이런 간증으로 사람들은 도대체 그 사이에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대치동 학원가에는 모든 염원이 대학으로 쏠려 있다. 그 졸린 눈을 가지고 학원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대학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인지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모호한 경계를 가지게 된다.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물음보다는 공부는 해야하는 것이고 그 공부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또 다른 도구가 되어버려있고 그 안에서 공부는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점수를 많이 올려주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 하나의 다른 세상이다. 그런 한복판에 서 있는 교회 역시 세속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보려고 하는 것일까? 영어 공부를 잘하고 점수를 잘 받은 아이의 모습이 있고 많은 학부모들과 아이들과 무척이나 관심을 가지는 표정이었다. 나름 교회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하나를 향하는 그 염원을 집중시킨 점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가? 하느님은 존재한다고 그렇게 믿어야 하며 우리는 그저 믿는 것보다는 무엇인가 내 앞에 증거함을 봐야지만 분이 풀리고 믿음이 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한다. "예수님이 살고 계신 시대에 살아서 그 많은 기적들과 그 많은 행적들과 말씀을 직접 듣는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을까."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일이 잘풀리거나 현실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소위 "어둔 밤"의 시기에 기도라는 것은 하기조차 힘들고 무엇을 생각해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의 나태가 찾아올때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그 예수님이 살아계신 시절로 돌아가보는 상상도 해보았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그저 전지전능하고 하느님의 아들이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내 눈에는 그저 좋은 것만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걸어온 그 여정의 순간 순간을 나는 깊이 깨달지 못하고 그저 피상적인 이야기 거리들로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이 했던 여정은... 그리고 내가 하나의 제자로 같이 했던 여정의 한 자락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전지전능함만이 들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인간적이고 너무도 약해보이고 때로는 그 예수님을 내가 감싸안아주고 싶을만큼 눈물이 가득한 그런 여정이었다. 세상의 갖은 모욕과 핍박과 인간적으로 받기 힘든 고통과 멸시 그리고 곁에서 사랑하던 사람들의 배반과 배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피하고 싶은 것들을 그분은 혼자서 받으셨다. 그리고 그 결과 성경에서는 그래도 하느님과 성령의 내려옴으로 그분의 신성을 표시해 주었지만 그 십자가형이 집행되던 그 언덕에 서 있었다면 난 그분에 대한 한 가닥 희망과 기대도 다 잊어버리고 그저 십자가형에 처해진 죄수로 바라보았을지 모른다.

 그분은 부활하셨고 그 사실을 믿고 그 부활로 이 세상의 모든 교회들이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지금의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그런 감동적인 마음의 변화를 가지기는 힘들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입술로는 믿는다고 얘기하지만 그분의 부활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통속에서 피어나는 꽃이었는지에 대해서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분의 부활을 그렇게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는 또다른 기적을 바라고 살아간다. 하느님을 믿어서 우리가 해야할 사명을 잊어버리고 그분이 주실 영광과 혜택만을 생각한다. 그분을 믿으면 우리에게 어떤 할인혜택이 주어지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조금 더 노력해도, 노력을 좀 안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겠지 그렇게 말이다. 그러나 그분이 걸었던 십자가의 길이 있었기에 영광도 있었음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기적안에서 살아간다. 지금 전세계 어디를 가도 마음만 먹는다면 주일에 미사를 드릴 수 있기도 하고 그리고 신앙인으로 내 안에 품고 있는 묵주와 기도서를 통해서 그리고 내 마음속에 있는 마음을 통해서 나는 오늘도 기도를 하고 오늘도 감사를 드린다. 그것이 우리가 보는 가장 큰 기적이 아닐까. 부활을 목격하고 모든 마음이 변해서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순교를 하셨던 사도들, 무엇을 위해 그리 귀중한 목숨을 순교로 바쳐야 했던 우리의 순교 성인들. 머리로만 그분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교회가 있다는 말을 받아들이다가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가슴으로 깨달기 시작했다. 너무도 놀라울 뿐이다. 같은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난 내 옆에 있는 형재 자매들이 바로 기적이다. 부활이 없었다면 나의 믿음, 너의 믿음, 우리의 믿음이 어찌 가능했을까. 그렇기 때문에 이는 하느님만이 가능하게 해주신 바로 기적이고 그 기적의 산물은 바로 우리들 서로 서로이며 우리의 교회이며 그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랑이라는 마음은 죄가 없으신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묻히셨던 그분의 부활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고 사랑에도 의미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님은 사랑이며 그 사랑을 통해서 우리도 자유롭게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댓가를 치루어야 할 것 같이 행복을 주는 사랑인데도 우리는 너무도 자유롭게 사랑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때로는 우리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많이 겪는다. 그리고 그런 일들에 대해서 감동을 받게 되고 그런 큰 충격이 있어야지만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버리곤 하는 것 같다. 예수님의 기적을 그렇게 수차례 보고도 결국 뿔뿔히 흩어져 버리는 엄선된 제자들, 그중에 이스카리옷 유다는 자신의 인간적 욕심으로 그분을 시험하려고 했다. 얼마나 많은 기적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큰 기적으로 우리가 변화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변화란 그분의 부활을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시작되어야 한다. 한걸음 한걸음 내가 걷는 이 길이 바로 그분의 부활을 통해서 변화되어 인간의 욕심이 이끄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가는 것이 바로 기적이다. 이러한 작은 변화는 쉽게 지치거나 허탈해지지 않는다. 연수를 통해서 나와서 사랑이 충만해지고 영빨이 100%인 것 같은 그 상태에서 얼마나 자신이 보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해답이 쉽게 나올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짜릿한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변화를 이끌고 그 변화의 길이 어느 방향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바로 말씀이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시편 119,105) 

 우리의 삶에서 간증이, 짜릿한 기적이 내 삶의 등불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그런 경험이 나쁘다고만 할 수 없지만 경험하였다면 그만큼 말씀에 기대어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신앙인에게 매일은 기도이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도 살아서 오늘 하루를 바라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하며 그분의 존재를 같이 호흡하면서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해야할 것이다. 감사가 없는 삶은 빛이 없는 어둠만이 존재하는 삶이다. 그리고 그분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을 청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항상 의논하는 삶속에서 내가 구해내지 못할 것 같은 지혜도 얻어내는 기쁨을 누리게될 것이다. 청원이 없는 삶은 싱거운 삶이다. 삶의 짭짤함으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이끌어낼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매일은 감사와 청원으로 이루어지며 내 자신에게 빛과 소금이 되고 나아가 그 행복한 삶의 증거자로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빛과 소금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기도이다. 그래서 기도는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수 있는 가장 큰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의 기도를 함은 결코 말씀을 벗어나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자신의 욕심만으로 밝히며 청원하는 것이나 자신의 욕심이 이루어짐에 감사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의탁하는 기도이다. 의탁이란 자신에게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어 그저 주, 당신에게만 의지할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일 것이다. 자신의 욕심을 채워주는 주님이나 자신의 욕심을 갈구하는 주님의 모습으로 우리가 모실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당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맡기는 간절함의 기도를 해보면 어떨까.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마르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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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기도 - 한국 수묵화

 예수님이라도 인간이시기에 자신의 험한 운명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은 하느님에게 의탁하고 그분의 뜻을 온전히 받을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 결과에 대해서 우리의 잘난 이성으로 판단하고 미리 결정하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요즘은 성경의 구절을 보기만 하여도 왠지 눈물이 난다. 성글 성글 맺히는 그 눈물을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무엇인가 바꾸기엔 너무 미약하고 무엇을 하기엔 너무 보잘 것없는 내 눈속에 맺힌 눈물을 보면 오히려 용기가 나기 때문이다. 그 눈물로 비록 영어를 원어민처럼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야하는 길 한 발자욱을 말씀으로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그 마음으로도 기적은 충분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성령으로 내 혀를 영어로 원어민처럼 감싸주지 않으셨지만 그보다 더 따뜻한 디딤돌을 보여주셨기에 난 오늘도 내 자신이 행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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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해 떠나는 여행

원준이 생각 2007/09/0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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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하는 여행은 아닙니다. 

당신을 보러가는 여행도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은 기도안에서 나와 항상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어쩌다 느낀 나의 맥박속에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을 기억하며 일부러 손댄 나의 심장속에 당신은 녹아 나의 혈관에 흐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나는 당신을 위해 떠나지만 당신과 함께도 당신을 향하지도 가지도 않습니다. 

넓은 대지의 향기를 맡으며 당신의 향기를 기억합니다. 
푸른 바다의 보석을 보면서 당신의 보석을 간직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다가온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 선물이 우리 주님이 주셨기에 수없는 감사에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어느 곳엔가 있을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제 운명의 그 사람을 지켜주소서.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이 힘겨워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자신의 인생을 밝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우리가 만나게 될 때
서로 자신들의 삶에 충실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자신의 삶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서서.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는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렇게 서로 준비하여 만나면이 사람이
하느님께서 지켜주셨던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여주소서.

그리하여 두 사람 모두 노력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삶에 충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당신을 위해 나는 준비하러 여행을 떠납니다. 
 
당신을 위해 나는 기도하러 여행을 떠납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당신, 
하느님께서 지켜주셨던 그 당신을 위해 나는 여행을 떠납니다. 
나는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 당신과 나 하나되는 날이 허락된다면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라는 서약대신 나 이렇게 고백하리오. 

"영원히 하느님의 사랑안에서 우리 서로의 사랑을 받치며 그 사랑을 나누리라." 
"내 가족에게, 내 공동체에게, 가장 버림받은 그 곳의 영혼까지도" 

나의 사랑  불타는 감정의 사랑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식지 않을 것이며 
나의 인내  지금껏 당신을 기다리며 기도하기에 오늘처럼 계속 변함 없으며 
나의 믿음  기적같은 당신의 기도에 어떠한 상황에도 끊임없이 따를것이며
나의 행복  당신의 존재만으로 난 슬픔에서도 이내 입가에 미소지을 것이며
나의 신앙  하느님의 사랑 당신과의 나눔으로 복음의 열매로 열릴 것이라고 

당신에게 고백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성모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
매일의 고백을 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tags : 고백, 기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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