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12/29 사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2. 2011/07/01 내등의 짐
  3. 2010/03/18 신앙의 중심

사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사람들 생각 2011/12/29 17:43
안셀름 그륀

우리는 실제로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바로 새해의 시작입니다

당신은 우리 삶이 새롭게 달라질 거라고 신뢰하십니까? 그리고 우리 생명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새로워지고, 우리 내면에는 언제나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하는 근원의 샘이 흐르고 있다고 믿습니까? 당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 샘은 결코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샘은 신으로부터 우리에게로 흘러 들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작이란 언제나 마음속 깊은 곳을 헤아리고, 내면의 원초적인 불안과 동경을 이해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천사가 일요일과 축일에만 인생의 환희를 맛보게 하는 건 아닙니다. 천사는 매일 아침 당신 눈을 뜨게 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천사는 당신 손을 잡고 인생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건강하다는 것, 즉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자유로이 숨 쉴 수 있다는 것 또한 즐거운 일입니다.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뜻밖의 기쁜 일들을 느끼는 것이 바로 환희입니다.

풍경은 말(言)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과 노래로 표현되고 찬미되지 않는다면, 풍경은 단지 존재하기만 할 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단어로 불렀을 때 풍경은 실재합니다. 그건 바로 풍경 속에 잠자고 있던 생명을 깨웠기 때문입니다.

수도사들은 인간을 위한 창조물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이 나도록 찬양합니다. 창조물은 신의 은혜에 감동한 인간의 찬양으로 완성됩니다. 하지만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은 창조물 속에 존재하는 신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자신만을 위해 세상을 개발하는 사람은 창조물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맙니다.

삶이 주는 즐거움만을 맛보려 해서는 안됩니다. 약함을 피하고 선함을 행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단념을 배워야 합니다. 단념은 내면의 자유로 가기 위한 금욕을 말합니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만이 환희를 맛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외부로부터 강요된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의 기분은 정말 우울할 것입니다.

가을빛은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화한 눈빛이 세상을온화한 빛에 잠기게 합니다. 온화한 가을빛 속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가을 빛은 메마른 나무조차도 아름답게 만듭니다. 이런 아름다움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잘 보입니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온화함이 묻어납니다.

인생은 종종 나이가 지긋한 사람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인생의 굴곡을 통과했기에, 흔들림 없이 온화한 눈빛으로 모든 것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그 어쩐 것도 전혀 낯설지 않지요. 또한 그들은 쉽게 판단하려 들지 않습니다.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온화한 가을빛을 온몸으로 발할 뿐입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을 음미하려고 하겠지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하면서, 신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 사실을 왜곡하려고 하기 때문에 삶이 새로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성 베네딕트의 수도자들은 정신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매일 죽음을 생각합니다. 슬픈 얼굴로 세상을 달려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음미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인생을 사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죽음을 연습하십시오.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알찬 인생을 가꾸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비밀이 남긴 자취를 쫓고 있습니다. 그래서 묻겠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살아가고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당신에게 삶이란 어떤 느낌입니까?

유년기의 상처에 집착하면 좋은 삶을 꾸려나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엄격하게 자신을 길러준 부모를 비난하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을 의식하며 살기 위해서는 유년기에 받은 상처와 이별을 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단지 좋거나 나쁜 경험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상처 속에는 건강한 뿌리도 존재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부모와 이별할 때 비로소 그 건강한 뿌리를 발견합니다.

안셀름 그륀 - 머물지 말고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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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등의 짐

사람들 생각 2011/07/01 00:15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습니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의 삶을 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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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중심

원준이 생각 2010/03/18 14:20
오늘의 말씀 (요한 5,31-47)



예수님을 믿게 하는 증언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나눔거리

예수님을 믿나요? 하느님을 믿나요? 그리고 성령은 믿고 있나요? 

삼위일체에 대한 내용은 교리적으로도 얼마나 어려운지는 교회의 대학자인 성 아우구스티노의 일화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느날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적인 해석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바닷가에 쉬러 갔는데 해변가에서 아이들이 빈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해변가의 얕은 웅덩이를 만들어 거기에 퍼 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평생 그렇게 해도 못할 것이라..."며 얘기하니 그 아이는 버릇없이 손가락질 하면서 "당신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보다 이 일이 더 쉽지요." 하면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는 커녕 우리가 믿는 주체에 대한 명확한 대상이 없이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를 하고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심을 깊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더 도움은 되겠지만 우리가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동안 우리의 마음이 정말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그리고 하느님이 주신 율법과 계명에 잘 맞춰 살아가고 선행을 베풀고 있는 그 중심에는 항상 하느님이 존재하고 그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모범입니다. 자신의 곤란과 고통으로 자신의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이고 그 신앙의 중심은 항상 내가 아닌 하느님이셔야 합니다. 

어려울 수록 자신은 자신을 중심에 놓기 쉽습니다. 상황의 불리함속에서도 자신을 합리화할려고 하고 그렇게 합리화 한 후에 성경의 말씀으로 끼워맞추는 합리화의 신앙을 찾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려울 수록 힘들수록 그리고 정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정말로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기도한다면 그리고 기 기도의 응답을 자신의 욕심이나 편견없이 잘 듣는 집중력을 가진다면 하느님이 주시는 뜻을 예수님처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문

일이 잘못되었을 때 왜 그렇게 했을까 후회하는 것은 그 일을 자기중심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일이 그렇게 되기까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도 하느님 중심에서 보는 것이 바로 회개이다. 

사제에게 죄를 고백할 때는 진정으로 죄의식을 느끼고 영혼의 흠집을 바로잡아야 한다. 
고백할 내용은 '가'인데 사제로 하여금 '나'로 알아듣게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 고백이다. 
영혼의 흠집을 바로잡는 영적 변화가 일어나야 올바른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이싿.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잘못을 저지른다. 
고통의 한가운데, 벼랑 끝에 서 있을 때는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도 나무 뒤에 있는 그림자만 보일 뿐 아름다운 꽃과 잎을 틔워내는 은총은 보지 못하기 쉽다. 

"마음의 치유와 용서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집착 때문입니다." 

김웅렬 신부님 (토마스 데 아퀴노) 의 품 너른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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