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2/09 걱정해 주는 마음
  2. 2008/04/03 배우자를 배우자
  3. 2004/08/06 냉정과 열정사이

걱정해 주는 마음

일상 다반사 2009/12/09 05:31
몇 개월 전 나에게는 큰 상처가 생겼다. 

오른편 정강이 정면에 움푹 페인 상처가 나 있고 정면으로 골절이 생겨서 고생을 한 적이 있다. 그 상처는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걱정해 주는 마음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상처이기 때문이다. 

맘에 드는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의 집에 데려다 주던 어느 날 인도를 지나가다가 어떤 아줌마가 문을 갑자기 열어 정강이가 차 문에 크게 부딪치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나는 어색한 그녀와의 사이때문인지 살짝 긴장한 상태였고 그렇게 부딪쳤지만 나는 아줌마에게 그저 괜찮다는 말만 전하고는 그냥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런데 이상하였다. 조금만 걸어갔는데도 골절에 발생하는 듯한 통증이 나타났고 이내 절둑거리게 되었다. 정강이 뿐만 아니라 가슴과 복부를 차문 모서리와 심하게 부딪쳤기 때문에 가슴 통증으로 한참 아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은 거의 없었다. 그 흔한 "괜찮냐"는 말도 듣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리고 이내 나는 정강이의 통증이 이상하다고 느껴서 "내일 X-ray 라도 찍어봐야 하나...? 라고 이야기 했지만... 

그녀의 반응은 이러했다.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리고 나는 X-ray 를 찍어 볼 필요도 없이 정면으로 골절이 생긴 것을 직감하고 몇일동안 깁스를 하면서 지내야 했었다. 사실 그녀를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은 그리 짧은 길이 아니었지만 그 정강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 흐른 피가 옷을 젖게 만들 정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일이 지나는 동안 그 흔한 안부 문자조차 그녀에게 보내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고 참 신기하게도 청계천 흐르는 물길 거슬러 올라가다가 그녀가 다른 이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꼭 그녀가 나에 대한 관심이 떠났다고 해도 그리 서운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신기하였다. 만약 내가 그녀의 동생이나 가족이었다면 그리고 그렇게 다친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무반응하게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픈 것을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지만 사랑하는 마음이란 보살피고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걱정해 주는 마음... 지나친 걱정이 아니라 상대방이 어디 아프지 않은지... 그렇게 살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말하지 않은 상처에 미소가 빠진 얼굴 속에서도 내 마음의 상처도 살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심한 사람을 만나기 싫어졌다. 항상 미소가 가득하라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근심과 걱정으로 남을 돌 볼 수 없다면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말 할 수 있을까? 

내 자신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내가 미소짓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기엔 어렵다 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고민과 고통으로 미소지을 여유조차 없는데 누군가 걱정해주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걱정하는 마음은 사실 사랑하는 마음이고 비록 어머니의 과한 관심과 표현이 부담이 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런 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관심... 그리고 걱정을 만들 수 있는 사랑 받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걱정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 별로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사랑은 걱정하는 마음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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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를 배우자

원준이 생각 2008/04/03 16:21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에서 자기와 너무 다른 삶을 살았던 동생의 죽음을 두고 주인공 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한다.
 

but you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힘들다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사랑하는 건 가능합니다...



많은 사람이 사랑에 미치고 사랑에 빠져 사랑의 의미에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서로 좋아서 만나고 만나서 결혼하고 그리고 그들은 행복한 시절에는 서로가 너무 잘 맞고 이해해주고 살아간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헤어질때는 대부분이 '성격 차이'라고 얘기한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과 같은 삶을 살지 않았기에 아무리 서로에 대해서 이해하고 삶의 이야기를 공유한다고 해서 서로를 완벽하게 알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변하지 않는 진리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서로가 헤어지기 위해서 이 당연한 이유를 들어서 쉽게 헤어지려고 한다.

 서로가 30여년 다른 환경과 다른 사고방식으로 살아갔던 삶에서 둘을 붙여 한 순간에 같이 살게 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모한 도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결혼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축복받은 경사중에 하나로 생각된다. 그러나 누구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살아있는 무덤'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사람들을 결혼하게 만들고 무엇이 사람들을 결혼으로부터 헤어지게 만드는가.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그 무덤으로 웃으면서 들어가도록 만드는 것인가.

 그런 복잡한 결혼의 성립의 문제에 대해서는 넘어가고 싶다. 일단 결혼을 한 사람들 - '부부'에게 있어서 사랑만 있다면 정말 이별없이 그들이 계속 지낼 수 있을까? 헤어지는 부부들은 사랑이 없음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할 것이 없기에 헤어지는 것 같다. 더이상 상대방에게 기대할 것이 없어서 항상 똑같은 것 같고 변화도 없고 알만큼 다 알아서 서로에게 지친 그런 상태이다.

 우리는 착각을 한다. 자신의 가까이 있는 사람은 분명히 자기가 잘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아라. 얼마나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서로에게 기대할 것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헤어짐을 목전에 둔 부부들도 그런 확실한 착각을 하면서 내가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이미 알건 다 알고 있다고 하면서 얘기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가 될 이야기로 서로의 나쁜 점들을 상세한 예제와 사건으로 주변인들을 설득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아라 얼마나 상대방에게 알고 있는가.

 우리는 적게는 20년, 많게는 30년이라는 삶을 각자 살아왔다. 각자의 가족 속에서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왔던 사람들이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다. 그런데 몇년안에 서로를 평가하고 다름이 틀리다고 쉽게 판단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배울만한 것들을 찾아보고 자신에게 좋은 점은 칭찬과 존경의 물로 크게 자랄 수 있는 또하나의 인격적 도약의 계기로서 결혼을 바라보는 것이다. 요즘의 조건적인 결혼으로 인격적 도약보다는 경제적 도약과 명예적 도약을 바라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는 그런 결혼의 중요한 가치를 쉽게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즉, 무엇을 만들어 어떻게 변화할 것을 고민하기 보다는 무엇이 되어 있어 그것을 통해 어떻게 물질적, 명예적 위치를 도약할까 고민하는 결혼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서로의 인격적 배움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결혼은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그 배움의 동반자이자 대상자를 우리는 배우자라고 부른다.

"배우자를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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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당신 곁의 배우자는 사실 알 것이 너무 많고 알면 알수록 당신에게 실망과 감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그 어떤 것이든 선사해줄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같은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나쁜 것은 보지 않고 좋은 것만 보는 취사선택의 태도가 아니라 그 어떤 모습이던 배움의 자세로 받아들이고 같이 대처하는 모습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결혼은 또 다른 배움의 공간이다. 당신이 남에게 얼마든지 실망을 줄 수 있듯이 당신의 배우자도 당신에게 얼마든지 실망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망으로 그친다면 당신의 배우자는 당신의 사라져가는 그 사랑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서로에게 새로운 발견을 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랑했던(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봐준다면 그 발견은 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해하고 사랑하면 이미 늦을지 모른다. 그건 우리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이해하기엔 상대방이 너무 복잡하고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생각보다 인내심이 부족하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더욱 인내심이 부족하다. 그래서 한순간 한순간 배움의 자세로 배우자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배움이란 내가 부족함을 전제로 한 겸손의 자세이며 배움이 많아질 수록 그 배움의 깊이는 깊어지고 세련됨은 더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배우자는 당신으로 인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손을 잡고 가면서 할머니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당신은 알면 알수록 참 신기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은 그들에게 서로는 내일 당장 죽음이 닥치어도 내가 가진 묘목이 사과나무인지 궁금함에 나무를 심을 배움의 호기심이 가득한 학생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로가 충분히 소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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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일상 다반사 2004/08/06 18:47
"혼자 있는 것에 냉정해질 수 있는 여자"

계속 냉정함의 포로인듯 살아가던 아오이 그렇지만 더 냉정했던 사람은 바로 준세였다.


아오이는 냉정할때 영어를 쓰고 준세에 대한 열정을 얘기할 때 일어를 쓴다. 그 두 모습 어떤 것도 아오이의 모습이었고 어떤 것을 숨기거나 어떤 것이 가려진 모습은 아니었다.


난 그들의 모습을 사랑한다. 피렌체의 두오모에 올라가서 두사람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알 수 없는 감동이 느껴진다. 그들이 정말 느껴야 했던 것은 그 약속이 아니라 그 약속이 가지는 의미일것이다.
 

'Junsei' is everything to me...
'Junsei' is the whole nine yards to me...

OST 의 잔잔한
The whole nine yards 의 제목이 세삼 감동으로 밀려온다.

외로움에 항상 냉정해 보이던 그녀는 결코 냉정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항상 감성적일 듯 한 피렌체의 복원사는 그의 삶만큼이나 사랑엔 열정적이지도 않았다. 개인적으로 아오이에게 60%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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